[윤중로]

남한산성

지령 5000호 이벤트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종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남한산성'을 더 이상 극장에서 만나긴 어려울 듯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남한산성'을 단순한 역사소설로 한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또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성 안에 갇혀 있는 건 400년 전의 그들만이 아니라 나 혹은 우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치욕스러운 과거를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에둘러 하고 있는 것"이라는 요지의 독후감을 내놓자 동행자는 "오버하지 말라"며 두 눈을 흘겼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내게 분명 그렇게 읽혔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독해가 가능합니다. 영화와 소설은 적에게 포위돼 완전 고립된 남한산성을 그리면서 세상의 참혹함과 일상의 지엄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혹함이란 유혈이 낭자한 살육과 고통, 죽음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그래서 치욕을 당하면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저 도저한 현실을 가리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단 하나, 죽음뿐입니다.

조금 멀리 간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비유도 가능합니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칸(청태종)은 쉽사리 그 실체를 드러내진 않지만 나날이 강화돼가고만 있는 저 강고한 시장으로, 힘 좋게 생긴 용골대와 교활한 정명수는 그 시장을 움직이는 하수인으로 바꿔 읽을 수도 있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척화(斥和)니 주화(主和)니 갑론을박하지만 칸의 홍이포가 벼락처럼 떨어지자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고 맙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삼전도에 끌려나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목격하면서, 좀 과장하자면 먹고사는 문제에 목이 매어있는 우리의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줄곧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는데, 그나마 숨통을 터준 건 척화파 김상헌도, 주화파 최명길도 아니고 대장장이 서날쇠였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이념과 도덕보다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 하는 듯했는데, 그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날쌔고 지혜로운 서날쇠였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끝을 대장장이 서날쇠가 장식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듯합니다. 칸의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생업의 현장인 대장간으로 돌아온 서날쇠의 건강한 모습과 화창한 봄날의 풍경은, 아마도 소설가 김훈이 말하고자 했던 그런 좋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