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불안한 기업들의 자금조달

김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23 17:16

수정 2017.10.23 17:16

[기자수첩] 불안한 기업들의 자금조달

"은행이 돈을 안 빌려주기 시작했어요. 회사채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 사모사채를 고집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모사채만을 찍는 이유를 묻자 대기업 계열사 A기업 직원은 "은행이 돈을 잘 안 빌려준다"는 대답을 내놨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신용도가 떨어지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데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리스크 관리 차원이다.

이처럼 기업이 힘들어지면 시중은행부터 먼저 발을 빼기 시작한다.
최근 신용등급 A- 이하의 기업들은 만기가 짧은 회사채 1~2년물, 단기성 자금인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발행 등 시장성 차입을 확대하고 있다.

불안한 기업에 대한 3년 이상의 투자를 기관투자자나 개인이나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기는 더욱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기업은 사채, 어음을 계속 차환하며 빚의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저신용등급의 기업들은 약점을 만회할만한 고금리를 얹어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러나 사채 투자자에게 달콤하게 여겨지는 고금리는 체력이 약화된 기업들에 비싼 이자비용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투자협회는 23일 '증권회사 국내외 균형발전 30대 과제'를 발표했다.

협회는 증권사에 대한 규제가 기업 모험자본 공급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고 직접금융시장(회사채, CP, 전단채 등)을 확대하기 위해 제도 손질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1년 8%대에 달하던 GDP 대비 직접금융시장 비중이 작년 6%대로 떨어진 점을 언급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2011년 이후 회사채 시장이 급격히 축소된 데는 2013년 동양사태가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한진해운 등 우후죽순 늘어나는 좀비기업에 대한 위기감이 있었다.

회사채, CP가 가져온 투자자 피해 사태는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즉, 시장성 차입이 줄어든 것은 규제에 의한 시장 위축이 아니라 사채 돌려막기가 가져온 투자자 피해 '학습'효과가 더 컸다.


업계는 시장성 차입 확대방안을 논하면서 과거 사례를 다시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직접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한 금융투자업계의 규제완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시장성 차입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이 건전한 기업의 투자확대를 위한 용도로 사용될지, '모험자본'이라는 미명 아래 빚 돌려막기로 사용될지는 의구심이 든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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