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뭐 이런 걸 다..] 기사식당과 소주, 그 어색한 동거 이야기

오충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25 08:10

수정 2017.10.25 08:10

견물생심이라는데... 기사식당 차림표의 맥주·소주
일반 손님도 있는데 안 팔 수도 없는 ‘어색한 합법’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술을 사고 마셨던 시절
#음주운전#택시기사
지난 16일 밤 9시. 청주시 청원구에서 택시기사 A씨(45.男)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면서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후에도 약 400m 더 운전했다. 그는 길가에 서 있던 차량 4대를 더 덮치고 경찰에 잡혔다. 다행히 승객은 없었고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은 A씨를 불구속입건했다.


#네가해도#내가벌금형#음주운전방조
작년 7월 남양주시. 함께 술을 마신 직장동료 이모(51.男)씨와 최모(55.男)씨는 함께 승용차에 올랐다. 최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69%상태에서 무면허로 운전하다 단속에 걸려 결국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런데 의정부 법원은 사건 당시 옆자리에 앉았던 이씨에게도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운전하려는 최씨에게 이씨가 자신의 차 열쇠를 건넸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를 음주운전 방조행위로 봤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경찰청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작년 음주운전 사고로 491명이 사망했습니다. 11대 중과실 사고 사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습니다.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최고조로 달한 요즘입니다. 살인미수와 다를 게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최근 처벌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법원은 직접 음주운전을 하지 않은 사람도 방조했다면 책임을 묻습니다. 운수종사자도 위 청주 사건처럼 음주운전으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합니다.

주류가 쓰여 있는 서울 동대문구의 모 기사식당 차림표 (파이낸셜뉴스DB)
주류가 쓰여 있는 서울 동대문구의 모 기사식당 차림표 (파이낸셜뉴스DB)

한편 ‘기사식당’은 일반인도 많이 찾지만, 원래 택시기사 등 운수종사자 유치가 목적입니다. 따로 주차장이 있거나 길가에 차 대기 쉬운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차할 수 없다면 기사식당 간판과 어울리지 않겠죠.

사실 간판과 더욱 어울리지 않는 것은 식당 안에 있습니다. 차림표에 버젓이 쓰여 있는 소주, 맥주 등 술입니다. 운수종사자의 음주운전이 기사식당 탓은 아니지만 무언가 어색한 광경입니다.

물론 차림표에 주류가 없는 곳도 있습니다. 식사류만 쓰여 있는 서울 동대문구의 모 기사식당 종업원은 “술이 있냐"라는 물음에 싱거운 질문이라는 듯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사업장은 바깥에 붙은 소주 광고포스터가 차림표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LPG충전소 옆에 있어 택시기사가 즐겨 찾는 한 기사식당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택시기사가 술을 주문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에 “절대 주지 않는다”라면서 “소주 1병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괜히 불똥 튈 일 있나”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어 “요즘은 술 달라는 택시기사도 거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택시 영업을 끝낸 기사 서너 명이 술을 시키는 경우는 있다”라며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한 차로 운전해 데려다주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말만 기사식당이지 일반 손님도 많아 다른 식당과 다를 게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현행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영업이면 음주 행위가 허용됩니다. 상호에 ‘기사식당’이 들어갔다고 술을 못 팔 이유는 없습니다. 어색해 보이지만 정당한 영업행위입니다. 결국 운수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주류 소비자 개인의 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운수종사자의 음주운전예방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버스·택시·화물기사 신규취업교육은 지역별로 있는 교통연수원에서 담당합니다. 서울시교통연수원 관계자는 “도로교통법 교육 시 음주운전 사고사례 등으로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식당·술 관계와 비슷한 또 다른 어색한 동거가 과거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술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지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71년 처음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생긴 이후 무려 25년 동안이나 술을 사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주류가 사라진 건 1996년부터입니다.
이는 정부가 법으로 막은 게 아닙니다. 한국도로공사가 휴게소 입주 업체와 계약하면서 조건을 달아 제한합니다.


한국도로공사 휴게시설처 관계자는 “입주 업체는 대부분 휴게음식점업으로 어차피 술을 취급할 수 없다”라면서 “일부 일반음식점업 등도 취급품목 중 ‘주류 제외’라는 항목을 계약 조건에 넣는다”라고 말했습니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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