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KTX를 탈 때면 필자는 기분이 좋다. 전에는 개찰구에서 직원이 일일이 차표를 검사했지만 언제부터인지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사람 대접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대부분의 승객을 정직한 승차자로 간주하고 일단 승차시킨다. 표 검사를 안해도 부정승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십 배의 벌금과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부정승차를 않는다.

반면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은 대상자를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간주하고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사전규제를 가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선 수긍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규제가 너무 많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아 소기의 정책효과를 내기 힘들다. 온갖 사전적 규제가 부가된 복잡한 정책들이 과연 효율적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금년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시카고대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는 '넛지(nudge)' 저자로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학자다. 2002년도 대니얼 커너먼 교수가 수상한 이래 15년 만에 행동경제학 분야의 발전 공로로 수상했다. 주류 경제학은 합리적 경제인(호모이코노미쿠스)을 상정하고 있는 데 반해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합리적 경제인은 비현실적이란 이유에서다. 경제적으로 계산된 수치에 의해서만 경제행위를 하는 로봇 같은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로봇인간이 아닌 우리 인간은 경제행위를 할 때 합리성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때론 충동구매를 할 때도 있고, 체면이나 동정심으로 인해 손해나는 거래도 한다. 세일러 교수는 주류 경제학이 상정하고 있는 합리성 대신에 인간의 감정(심리상태)이 개입된 제한된 합리성(limited rationality)을 상정하고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정부의 각종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보통 정부의 정책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정책 수요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제약하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세일러 교수는 수요자에게도 일정 부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경우를 넛지(부드러운 개입)라고 한다.

넛지에 따르면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슬쩍 찔러주듯이 주의를 환기시켜서 심리상태를 친정책적 분위기로 유도하면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의사가 실패할 확률이 10%라고 말하는 경우보다는 성공할 확률이 90%라고 말할 때 환자들은 수술을 더 긍정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는 실패라는 단어보다는 성공이란 단어가 더 맘에 와닿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넛지를 활용해 상당한 정책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작금의 정책들은 너무 복잡하고 사전규제가 많다. 넛지처럼 정책도 부드러운 개입으로 하라. 그래야 국민도 KTX를 타듯 기분 좋게 정책을 수용할 수 있다.

이윤재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