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대출규제가 안통하는 ‘우대권’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30 17:02

수정 2017.10.30 17:02

[기자수첩] 대출규제가 안통하는 ‘우대권’

국내 최초 보드게임. 1980~90년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은 재산증식형 게임으로, 직역하면 푸른 구슬 혹은 지구를 뜻한다. 모노폴리라는 부동산 보드게임과 비슷한 이 게임은 '부루마블'이다.

나는 부루마블을 통해 각국 수도와 인구, 면적, 지리적 특성을 배웠다. 월급을 받고, 벌금을 내고, 은행에서 연금도 받게 되는 지금 보니 월급생활자들이 사회에서 해볼 만한 경제생활 전반에 대해서도 처음 터득했다.

아시아 국가는 대부분 싼 땅이고 비싼 땅에는 뉴욕, 파리, 런던이 있는 것을 보며 선진국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 대신 홈어드밴티지 덕에 가장 비싼 땅은 서울이었다.


주사위를 굴려 걸린 땅을 소유하거나 건물을 지어 다음 사람이 통행할 때 돈을 받는 방식의 이 게임을 적어도 수백번 해본 결과 승자는 대부분 초반에 많은 땅을 산 사람이었다.

이 땅은 잘 안 걸려서, 통행료가 싸서, 마음에 안 들어서, 현금이 충분하지 않아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땅을 살 기회를 지나친 사람들은 대부분 졌다. 확률 게임이다보니 되도록 많은 땅을 갖고 있는 게 유리했다. '확률'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이유는 참가자 모두 같은 월급을 받고, 상승률 없이 일정한 토지세나 건물세를 받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절대적인 카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대권'이다. 우대권으로는 아무리 비싼 통행료도 면제받을 수 있다. 우대권 카드를 얻는 과정도 역시 주사위가 주는 행운 중 하나였으니 이렇게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역시 어린이를 위한 게임이라서 가능했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각종 규제책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엔 대출을 옥죄며 투자대상으로서 부동산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정책이 얼마나 복잡한지 대출 담당 은행원들도 과외를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평균 이상의 월급수입자들이 두 채 이상 집을 가질 경우 받을 수 있는 대출금액은 절반으로까지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꺾이고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안정기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부동산시장 질서를 흔드는 큰손, 이미 우대권을 여러 장 가지고 대출규제를 간단히 넘은 사람들은 또 한번 기회를 맞을 게 뻔하다.
현실 사회에서 우대권은 주사위를 굴려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나보니 쥐게 된 금수저에서 비롯된 것이라 더 씁쓸하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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