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네이버 때려잡기. 그 다음은?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01 13:24

수정 2017.11.01 13:24

네이버 때려잡기. 그 다음은?
A: 네이버가 뉴스제공 기능을 폐지한다면 독자 여러분은 각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개별적으로 원하는 뉴스를 찾아볼 의향이 있으십니까?
B: 네이버가 뉴스제공 기능을 폐지한다면 언론사 경영진 여러분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활용한 뉴스제공 플랫폼 구축에 투자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네이버가 뉴스를 유통하면서 배열 순서와 노출 여부에 불공정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국정감사장에는 이해진 창업자가 증인으로 불려나가 집중포화를 받았다.

네이버가 분명 잘못했다. 뉴스 유통은 신뢰가 밑천인데,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강력한 실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결국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네이버더러 뉴스제공에서 손을 떼라고 요청한다.
뉴스배열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 설계(알고리즘)를 공개하라고도 한다.

디지털뉴스부장으로 발령받은지 오늘로 열흘째다. 아직 디지털뉴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신삥 부장의 눈으로 보기에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는 네이버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아닌 듯 싶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는 엉뚱한 방법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질문 A와 B에 대해 압도적인 긍정적 답변이 있어야 정치권의 요구가 대책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독자로서 나는 A질문에 'NO' 한다. 구글도 있고 페이스북도 있는데...그들이 내가 평소 관심있어 하는 뉴스를 모아서 보여주는데 굳이 KBS, MBC나 신문들의 홈페이지를 찾을 것 같지 않다. 머리로는 언론사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 뉴스를 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모바일 데이터도 아깝고 시간도 부족하다.

디지털뉴스부장으로서 질문 B에 대한 답은 'ㅜ ㅜ'다.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다. 구글, 페이스북은 고사하고 우리 회사보다 몇 배 큰 대형 언론사를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인다.(지나치게 소극적 판단에 대해 사장님께 혼날지도 모른다.)
이것이 한국 언론과 인터넷 산업의 현실 아닐까 싶다. 네이버가 뉴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KBS와 각 신문사의 홈페이지가 아닌 구글과 페이스북이 채울 것이다. 뉴스라는 중요한 콘텐츠를 놓친 네이버의 매출과 신사업도 구글과 페이스북의 몫이 될게 뻔하다. 구글, 페이스북과 협상할 능력이 없는 중소 언론사는 아예 디지털 뉴스 유통 기회조차 못 잡을지 모른다.

네이버 문제에 정치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한다. 대형 언론사의 목소리로 '신속'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극단적인 결정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인터넷 산업과 언론 공정성의 잣대로 진득하고 깊이있는 합의점을 찾아가도록 논의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권이 할 일이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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