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질긴 낙하산, 차라리 제도화 어떤가

정권 잡으면 누구나 논공행상
법으로 일정한 몫을 떼어주되 민간기업·단체엔 접근 막아야

낙하산 부대가 바쁘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국회 국정감사가 끝났으니 곧 큰 장이 설 것 같다. 이미 몇몇은 착지에 성공했다.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낙하산은 영원하다.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코드인사 논란에 휩싸여 스스로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패가망신의 '패'자도 꺼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낙하산의 뿌리는 논공행상에 닿는다. 1623년 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냈다.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1, 2, 3등급으로 나눴다. 이괄은 2등 공신에 속했다. 이괄이 누구인가. 반란군을 이끌고 도성을 점령하는 데 앞장선 지휘관이다. 그런데 고작 2등 공신이라니. 게다가 평안도 변방으로 발령까지. 분개한 이괄은 1624년 반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혼비백산 공주로 도망쳤다. 조선 역사상 반란군이 한양을 점령한 것은 이괄이 전무후무하다.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이괄은 참수된다. 이 모든 비극이 논공행상을 둘러싼 불만에서 비롯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을 잡은 이들에겐 큰 교훈을 남겼다.

요즘 정권은 캠프에서 출발한다. 대선은 지면 꽝, 이기면 대박이다. 이겼는데 나 몰라라 하면 나라도 무지 섭섭하겠다. 불만이 터져나오지 않도록 잘 다독여야 한다. 이때 공공기관 이사장.사장.감사만큼 요긴한 자리가 또 있을까. 연봉도 높고 어디 가서 폼 잡기도 좋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현실적으로 낙하산을 원하는 수요도 있다. 종종 공기업 노조가 낙하산 환영 성명을 낼 때가 있다. 힘 센 관료나 정치인이 오면 밖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정권 교체 뒤 낙하산을 아예 제도화하면 어떨까. 공기업엔 정부 지분이 많다. 주주(정부.정권)가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맞다.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 공기업 경영진 임기를 정권 임기와 일치시키자. 쓸데없이 국정철학이 맞니 안 맞니 다투지 말고 정권이 끝나면 기존 경영진은 자연히 물러나는 것으로 하자.

둘째, 낙하산 투하 대상 공기업과 단체를 법령으로 정하자. 그래야 민간 기업.단체에 집적대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 사실 낙하산을 둘러싼 논란의 큰 원인은 정권이 사기업.단체를 지저분하게 기웃대는 데 있다. 예컨대 무역협회는 7만개 넘는 회원사 수출기업들이 주인이다. 한국거래소는 증권.선물사들이 주주다. 따라서 지금처럼 무협 회장, 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정권이 넘보면 반칙이다. 민영화된 KB국민은행, 포스코, KT는 말할 것도 없다. 정권은 얼씬도 해선 안 된다. 여기서 문제 하나. 상장사인 한국전력은? 상장사라도 산업은행과 기획재정부가 1.2대 주주다. 정부가 간섭해도 할 말이 없다.

셋째, 아무리 정권 몫이라도 전문성을 존중하자. 국민연금 이사장이나 기금운용본부장이 그런 자리다. 국민연금 운용을 국정철학에 맞추면 박근혜정권 꼴이 난다. 이런 자리는 임기도 예외적으로 10년으로 못 박자.

세월호 사건 뒤 관피아가 나라 망친다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관피아가 없어졌나? 그 자리를 정피아가 메웠다. 낙하산 근절 같은 공수표는 그만 날리자.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낫다. 그게 덜 '스튜핏'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