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우리은행장 선임 과정서 정부는 빠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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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 임추위 참여 논란.. 자율경영 약속 지키길

채용비리 문제로 공석이 된 우리은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또다시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차기 행장 선임에 직접 관여할지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우리은행은 이번 주말께 이사회를 열고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방식 등을 논의한다. 관건은 정부 지분 18.52%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 비상임이사가 임추위에 들어갈지 여부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과점주주 형태로 민영화에 성공했다. 동양생명, 한국투자증권 등 7개 과점주주(3.7~4%)가 29.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주주는 여전히 정부다. 최대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뜩이나 우리은행은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마당이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은행장 선임에 손을 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신뢰 문제다. 정부는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자율경영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2월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과점주주 대표들을 만나 "예보는 우리은행장 선임 임추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민영화된 우리은행의 자율경영에 대한 정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초 행장 선임 과정에서 예보는 임추위에서 빠졌다. 민영화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도 자율경영 약속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신뢰가 무너진다.

자칫 십수년간 공들인 민영화 작업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은행은 2001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래 여러 차례 민영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과점주주 7곳에 지분을 넘기면서 부분 민영화가 이뤄졌다. 완전 민영화는커녕 민영화가 뒷걸음칠 기미를 보이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이번주 들어 외국인들은 우리은행 주식을 70만주 넘게 내다 팔면서 주가가 5% 가까이 떨어졌다. 과점주주들과 사외이사는 물론 우리사주조합(지분 5.6%)과 노조 측도 예보의 임추위 참여에 반대 입장을 내놨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9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을 '최강 정보기술(IT) 환경을 가진 금융후진국'이라고 했다. 올해 한국 국가경쟁력은 137개국 중 26위다. 하지만 금융성숙도는 74위에 그친다. 대출용이성(90위), 은행건전성(91위)을 보면 한국의 은행들이 얼마나 담보대출 위주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만 해왔는지 알 수 있다. 관치로 인한 폐해다. 소비자를 위한 상품개발과 서비스는 뒷전이고 정부 눈치만 봤기 때문이다.
금융분야에서 삼성전자가 못 나오는 이유다. 관치가 심해질수록 금융 혁신은 그만큼 멀어진다. 정부는 약속대로 우리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손을 떼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