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비대칭 문화 전력이 힘이다

BBC 우리말 라디오 뉴스 시작.. IT강국 한국은 손놓고 있어
北 내부로 바깥 진실 알려야

야구에서 3루수가 맡는 수비 지역이 핫코너다. 강한 타구가 자주 날아와 위험천만한 곳이라서다. 북핵 문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순방을 계기로 요란한 변주를 일으키면서 한반도가 지구촌의 핫코너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당장 한.미 관계에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 한국이 내놓은 '3불(不) 입장'이 불씨였다. 즉 한.중 간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불가,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체계(MD)에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포기 등을 밝히자 미국이 우려를 표시하면서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한국이 (중국의 압력으로) 주권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라는 비대칭무기가 이처럼 위력적이다. 문 대통령이 7일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진화할 때까지 한.미 관계를 뒤흔들었으니…. 김정은인들 이를 모를까.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며칠 전 미 하원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완료하면 대미협상에서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한.미 간 틈을 벌려 적화통일을 꾀하려는 로드맵이다.

혹자는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무려 38대 1(2012년 기준)에 이른다며 북의 이런 야무진 꿈을 망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 패권경쟁을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라. 경제력 우세에다 민주주의 성숙도나 문화 등 소프트파워에서도 앞섰던 아테네는 호전적인 스파르타에 무참히 패배한다. 북한이 그저 세습체제를 지키기 위해, 혹은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거래용으로 핵 카드를 구사하고 있다는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일깨운다.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일까. 우리는 북한의 핵 인질이 될 판인데도 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방어용 사드조차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맘대로 들여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미 조야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북 선제공격이니, 김정은 참수작전이니 하는 옵션도 실효성은 차치하고 실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봐야겠다. 북한은 이판사판으로 핵 도박에 올인 중인데도 우린 손가락 하나 다칠세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이를 꿰뚫어보고 있는 북한이 끝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게 된다면? 태 전 공사의 말처럼 이를 기화로 북한이 적화통일을 기도할 개연성은 논외로 치자. 다만 이로 인해 통일은 멀어지고, 분단체제가 고착화한다면 이 또한 보통 문제인가.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북 세습체제의 온존은 남북 구성원의 고통 장기화를 뜻하는 까닭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를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결할 힘도,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무력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통일을 긴 눈으로 내다볼 때 우리에게도 지렛대는 있다. 태 전 공사도 "김정은의 야욕을 꺾으려면 북한 주민의 각성을 통해 내부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이 바깥 세상의 진실을 대면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북 내부로 외부정보를 전하는 일이 쉽진 않다. 북의 보통 사람들이 외부와 철저히 절연돼 있어서다.
하지만 우리는 손놓고 있는데 영국 BBC방송은 지난 9월 북한을 대상으로 한국어 라디오 뉴스를 시작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답게 방법을 찾으면 왜 없겠나. 예컨대 휴전선 부근 고지에서 TV 예능프로그램을 북한 방식으로 송출하는 대안도 검토할 만하다. 우리에게는 북핵보다 장기적으로 더 위력적인 '비대칭 문화 전력'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