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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장인정신' 사라져가는 일본

전선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0 17:18

수정 2017.11.10 17:18

[월드리포트] '장인정신' 사라져가는 일본


"고객의 신뢰를 배신했습니다.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 철저히 따르겠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지난 두달간 일본 산업계에서 가장 자주 들린 말이다. 닛산자동차를 시작으로 고베제강, 다시 닛산자동차, 스바루자동차로 이어진 최고경영자의 사죄 릴레이는 올해 하반기 일본 산업계 최고 이슈가 됐다.

과거부터 일본은 '품질경영' '장인정신' 등의 이미지를 통해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은 믿고 쓸 수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 산업계는 성장했고 오늘날 '제조 강국' 일본을 이뤄냈다.

딜로이트글로벌이 지난 2015년 발표한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에서 일본은 중국, 미국, 독일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에도 4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당시 딜로이트글로벌은 전망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로 '장인의 나라'는 지금 그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철강업계 3위로 비행기와 자동차, 기차, 발전소 등 산업계 전반에 납품해온 고베제강은 품질데이터 조작으로 일본 산업계 근본을 뒤흔들었다. 일본의 자랑 신칸센에는 데이터가 조작된 철강제품이 사용됐고, 일본 내 화력발전소 3곳에는 품질이 조작된 배관이 사용됐다. 특히 화력발전소에 사용된 배관은 가장 중요한 냉각장치용으로 2900여개나 사용됐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자 일본 내 기업들은 앞다퉈 자신들이 사용한 고베제강 제품은 데이터는 조작됐으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성명을 내고 있다.

일본 제조업 순위 7위(2016~2017 영업이익 기준)로 일본 산업의 한 뿌리인 닛산자동차 스캔들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9월 18일 처음 '무자격자 신차검사' 문제가 발각됐을 때만 해도 발 빠른 리콜과 사죄로 사태가 쉽게 진정되는 듯했다. 이후 모든 검사체계를 고쳤다고 발표한 닛산은 10월 3일부터 판매를 재개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적발된 후에도 무자격자가 완성차 검사를 계속해왔다. 이에 더해 그동안 일삼아온 온갖 부정이 일본 언론들을 통해 양파 껍질 벗겨지듯 밝혀졌다.

닛산은 일본 정부가 감사에 나서는 날만 무자격자를 검사 업무에서 제외했다. 관동과 규슈의 닛산 공장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증언에 따르면 닛산은 조직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해 왔다. 또 닛산은 정부 감사가 있는 날이면 무자격자들에게 유자격자들이 다는 배지를 달도록 지시했다. 부정은폐가 장기간 고질화된 것이다.

닛산은 완성차 검사원 시험에도 부정을 저질렀다. 시험 내용을 사전에 유출하거나 해답을 보여줬다. 검사원을 회사가 나서서 만들어 준 것이다.

스바루자동차도 군마현 오타시에 있는 공장에서 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연수를 받던 직원이 완성차 검사를 해온 것이 최근 밝혀졌다. 스바루는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9일 차량 40만대 무상 리콜을 결정했다.

'장인의 나라' 일본에서 이런 스캔들이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아사히신문은 지난 8일 닛산자동차 사태의 전모가 밝혀졌다며 원인을 인력난에서 찾았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닛산자동차는 최근 생산 확대에 따른 시프트 개편과 베이비붐 세대 퇴직 등으로 인력난에 허덕였다. 일본 내에서 전기차 '노트'가 큰 성공을 거둬 공급해야 할 물량이 늘어났는데 사람은 뽑히지 않았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출산.고령화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일본을 뒤흔드는 상황과 교묘히 맞물려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 1971년 100만명 넘던 신생아 수가 지난해 40만6000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올해라고 나아졌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지금 구직난 시대를 살고 있지만 10년 뒤엔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
불행이 닥치기 전 철저히 대비하는 길밖에 다른 최선은 없지 않을까 싶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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