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대들의 언어 '급식체' 사용 확산 괜찮을까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3 17:56

수정 2017.11.13 17:56

"언어파괴 막아야" vs "자연스런 문화현상… 곧 사라질 것"
실제 생활서 사용하기 보단 SNS 등서 재미로 많이 사용.. 의미전달보단 놀이에 가까워
인터넷 등 특정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수명 짧아
#. 인정 안해서 후회한다면 후회할 시간을 후회하는 각이고요. 인정하지 않는 사람 에바참치꽁치 가문의 수치. 내 드립 오지는 부분 실화냐? 이거 레알 반박불가 빼박캔트 버벌진트 버캔스탁인 부분 ㅇㅈ? 어 인정? 대박중박소박명박이도 인정하는 각?
'SNL 코리아 시즌 9'에서 스타강사 설민석으로 변신한 권혁수가 상세한 설명과 재연으로 10대들 사이에 널리 퍼진 변형 언어, 한국어 파괴 현상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설혁수 특강'방송 장면. 사진=SNL방송 캡처
'SNL 코리아 시즌 9'에서 스타강사 설민석으로 변신한 권혁수가 상세한 설명과 재연으로 10대들 사이에 널리 퍼진 변형 언어, 한국어 파괴 현상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설혁수 특강'방송 장면. 사진=SNL방송 캡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대들의 언어 '급식체' 사용 확산 괜찮을까


이 문장을 한번에 읽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당신은 '급식체'를 아는 사람이다. 몇 번을 읽어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면 아마 '급식체'라는 단어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내 의견에 동의하느냐'라는 말을 강조한 이 문장은 의미 전달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10대들의 표현이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어휘라서 '급식체'로 불리는 신조어가 최근 TV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되면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13일 기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안드로이드용 기준)에서도 '급식사전' '급식체 인정퀴즈' '신조어 사전' 등 관련 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급식사전은 이미 5000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급식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용범위가 확대되는 가운데 이를 언어 파괴로 보고 순화할 것인지, 자연스러운 문화현상으로 해석할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낯설고 거북해" vs. "자연스러운 현상"

과거에도 청소년들의 은어나 줄임말은 존재했지만 기성세대가 정정하고 교화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기성세대들이 오히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10대들의 언어를 쫓아가기 위해 애쓰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8년차 직장인 A씨(32)는 "이런 신조어는 물론이고 줄임말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면서 "급식체라는 표현조차 낯설고 거북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전에도 이 같은 또래 문화가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전보다 빨리, 더 많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트렌드를 모른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30대 직장인 B씨(33)는 "10살 어린 동생이 '오지다'라는 단어를 쓰는데 무슨 뜻인지도 알고 특별히 거부감은 없다"면서 "썸, 대박 등 새로운 어휘가 생겨나고 잘 사용하지 않던 기존 어휘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B씨는 "하지만 이런 어휘를 굳이 억지로 배워서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쓰면 자연스럽게 나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들은 오히려 "일상에선 안 써" 선긋기

정작 젊은 세대는 '급식체'를 일상에 쓰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청소년들도 주로 텍스트에서 사용할 뿐 실제 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유희적 측면에서 재미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C씨(22)는 "10대들은 모르겠지만 20대만 돼도 심하게 쓰는 편은 아니다"라면서도 "ㅇㅈ, ~각 정도는 흔히 쓰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원래는 인터넷 방송 BJ들이 쓰면서 유행이 됐는데 TV에서 소개되면서 심해진 것 같다"면서 "일상에서나 회사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아예 안 쓰려고 주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1년차 직장인 D씨(27)도 "선배들 중에서도 대리급까지는 분명 이런 단어를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절대 쓰지 않는다"면서 "유행이 됐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쓰던 말을 회사에서까지 쓸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

■자음만으로 뜻 전달 등은 한국어의 확장성…'긍정' 평가도

새로운 어휘가 생성되고 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의 확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현직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E씨(33)는 "학생들과 있다 보니 급식체가 익숙하다"면서 "비속어만 아니면 새로운 말이 생기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새 말이 생긴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뜻을 알면 불편하고 그 자체가 비속어인 단어를 제외하면, 자음으로만 표기하거나 '~각'과 같은 표현은 언어 사용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가천대 한국어문학과 정한데로 교수도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정한 언어 공동체 내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언어 문화인데 이런 문화현상이 온라인 경계를 넘어서 오프라인까지 확대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면서 "실제 화자 간 언어사용 공간에서 공감받기 어려운 표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 "1990년대 PC통신의 언어파괴, 또 그 이후 외계어로 불리는 표현들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런 언어들은 수명이 길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조어의 짧은 수명과 관련, 새로운 언어현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작가 F씨(35)는 "실제 대본 작업을 할 때 젊은 캐릭터가 이런 대사를 쓰면 현실감이 높아질 텐데 나이 많은 시청자는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본을 쓰는 시점과 방송이 되는 시점이 달라서 방송이 나갈 때엔 이미 시들해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유행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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