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지방분권

김아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5 16:57

수정 2017.11.15 16:57

[차관칼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지방분권

무더웠던 지난여름, 시골에 있는 친구로부터 들은 일이다. 이웃집 어르신이 사흘째 보이지 않아 무슨 변고가 났겠거니 하고 염려가 돼 어르신 댁에 들렀는데 가만 있어도 땀이 철철 나는 더운 방 안에서 어르신 혼자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셔서 놀랐다고 했다. 왜 밖에 도통 나오질 않으셨느냐는 물음에 전동휠체어 배터리가 닳아 집 밖에 나가질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느냐며 몇 번이나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연일 37도를 육박했던 무더위 속에서 집안에 3일이나 꼼짝 없이 갇힌다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알고 봤더니 실제로 종종 벌어지는 일이란다. 지역에 하나뿐인 장애인보조기구 센터는 휠체어 등 보조기구를 대여하고 수리하기 위해 센터로 찾아올 수 없는 수천명의 장애인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재원을 마련해 장애인보조기구 수리사업을 운영하는 대도시 지방자치단체는 형편이 낫다.
자체 재원을 투입할 여건이 안 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고장난 휠체어 때문에 집에서 나오시지 못했던 이웃 어르신 같은 분들을 알면서도 돌볼 수 없어 중앙정부의 재정지원만 바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디 그 어르신뿐이랴. 수도권에는 골목만 돌면 편의점이 있지만 시골에서는 10분은 차를 타고 나가야 반찬거리를 살 만한 상점이 나온다. 민간 편의시설뿐 아니라 어린이도서관, 공영 스포츠 시설은 도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해마다 국가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현장 밀착형 서비스는 충분치 않다. 국가가 국고보조사업을 새로 만들어낼 때마다 지방재정을 매칭하다보니 정작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해지고, 결국 현장의 소리를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여건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국민들은 새 정부 들어 속도를 내고 있는 지방분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분권의 방향은 지방이 주민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늘어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 간에 그 혜택을 골고루 배분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전국 어디에 살든 이전보다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 개정 추진과 함께 '현행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을 거쳐 장기적으로 6대 4까지 개선한다'는 구체적 재정분권 목표까지 제시했다. 이를 통해 지방의 재정여건이 개선되면 국가가 일일이 책임질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 주민 여가, 주거환경 개선 등 현장의 요구를 촘촘히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인구와 경제, 산업이 밀집된 대도시 등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그 혜택이 더 돌아가 지역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늘어난 세수가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에 골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균형장치를 마련하는 등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지방분권의 성공은 어려운 게 아니다.
주민의 혜택이 실질적으로 늘어나는지만 살펴보면 된다. 어르신이 더 이상 무더위에 며칠씩 집에 갇혀 계실 필요가 없고,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내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동네에 어린이도서관이 생겨나는 변화가 있는 것. 이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우리의 삶을 바꾸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것이 성공한 지방자치가 아닐까.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