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익의 재팬톡!]

"지진에 준비돼 있습니까?" 묻는 일본

지령 5000호 이벤트

- 일본,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① 
- 30년 내 강진 발생확률 70%...지진대비책은? 

일본 도쿄도 방재책자 ‘도쿄방재’ 한국어 매뉴얼 첫 장 /사진=fnDB
【도쿄=전선익 특파원】11월 12일 일요일 오전 8시.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본점 사무실이 북적거립니다.

“진도 6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전 직원에게 안부확인시스템을 통해 메일을 발송하겠습니다. 임원 및 그룹장, 각 팀장들은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해 주십시오. 모두 정해진 장소까지 이동하겠습니다.”
이날은 이 은행의 사업연속성계획(BCP)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재난 대피소장을 맡고 있는 일본인 은행직원의 카랑한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지진을 가상한 시나리오와 훈련개요가 담긴 두꺼운 매뉴얼을 단 한자도 그냥 넘기지 않고 모두 정독합니다. 질서 있게 모여 있는 직원들은 실제 지진이 난 마냥 사뭇 진지해보입니다.

BCP훈련이란 재난이 발생해도 서비스를 지장없이 제공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지진 같은 재난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은행, 통신사 등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훈련입니다. 일본 전국은행연합회에 가입된 은행들은 모두 같은 날, 같은 시간, 1년에 2번, BCP 훈련을 진행합니다. 3시간에 걸쳐 훈련을 마친 뒤에는 결과를 전국은행연합회에 통보하고 훈련을 종료합니다.

(와지마<이시카와현> 교도=연합뉴스) 30일 일본 정부와 이시카와(石川)현이 현내 와지마(輪導)시에서 실시한 미사일 대피훈련에서 초등학생들이 창을 등진 채로 책상 밑에서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감싸고 있다. 2017.8.30 /사진=연합뉴스
일본은 보육원, 유치원, 학교, 회사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정기적으로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합니다. 소방법 제 18조에 근거해 특정 소방 대상(다수의 사람이 출입하고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방화 대상물)에서는 연 2회 이상의 소방 훈련을 해야 합니다. 또 통보 훈련 연1회, 피난 훈련 연2회가 예외 없이 시행됩니다.

지난 7일에는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스미토모 부동산 건물에서 빌딩 종합 방재 훈련이 실시됐습니다. 빌딩에 입주한 모든 업체가 참여하는 훈련으로 규모도 상당합니다. 훈련은 오전 11시 지진 발생 안내와 함께 화재 경보 알람이 울리면서 시작됐습니다. 빌딩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이후 화재 진화 훈련과 물소화기, AED 사용 숙지 훈련 등을 거쳐 무려 1시간이나 걸린 훈련이 마무리 됐습니다.

[그래픽] 최근 '불의 고리' 주변 지진 현황 /사진=연합뉴스
'불의 고리'라고 일컬어지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해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철저한 방재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이미 생활입니다.

개인적 의견을 첨부하자면 무엇이든 준비를 해야 성이 풀리는 일본인의 특성도 반영된 것 같습니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을 겪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이라 불리는 이 지진은 1995년 발생한 한신대지진(규모 7.3)의 180배 위력이었습니다.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했던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은 사망자와 실종자 2만여명, 피난 주민 33만명이라는 가슴 아픈 상처를 입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 기업의 한 임원은 “사무실 건너편 도쿄타워가 S자로 출렁이는 것을 보는 순간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건물의 흔들림 때문에 현기증이 났다”고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한국인인 그는 “일본인 직원들이 비상계단으로 대피하는데 누구하나 뛰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나도 뛸 수가 없었다"며 준비된 일본인들의 재난 대응 자세를 회상했습니다.

(포항=연합뉴스) 이덕기 기자 = 포항 지진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흥해 체육관에 대피해 있다. 2017.11.16 duck@yna.co.kr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16일에도 규모 3.6의 여진을 포함해 총 49차례의 여진이 이어졌습니다.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일어난지 1년 2개월만입니다. 이제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방재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합니다. 방재 훈련을 하면서도 마치 장난치듯 대충 시간을 떼우고 넘어갔던 것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됩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전 훈련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최근 일본 도쿄도는 도민을 위해 각 가정에 방재책자인 ‘도쿄방재’를 한부 씩 나눠줬습니다.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버전도 각기 마련돼 있습니다. 노란 방재 책자의 첫 장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30년 이내에 70%의 확률로 발생한다는 지진에 당신은 준비가 돼 있습니까?”
가사하라 준조 도쿄대 명예교수 /사진=fnDB
세계적 지진 전문가인 가사하라 준조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1월 파이낸셜뉴스가 개최한 ‘2016 FN 긴급진단포럼: 한국형 지진대응체제 구축 시급하다’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한국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진원이 얕기 때문에 같은 지진이라도 피해규모는 10배 이상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 한국형 지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당신은 지진에 준비 됐습니까?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