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지진과 수능 그리고 유통가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6 17:19

수정 2017.11.16 17:19

[기자수첩] 지진과 수능 그리고 유통가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수년 전 화제가 됐던 TV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대사다. 이 말은 주인공인 장그래의 명대사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프로바둑기사 조치훈 9단의 명언이다. 한번의 대국에서 이기고 지는 게 세상 살아가는 데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번의 대국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제 발생한 포항 지진의 파장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해당 지역의 피해도 크다.

포항 지진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왔다.
수능이 1주일 연기됐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온 60만 수험생들도 지진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수능이라는 한번의 시험으로 수십만명의 운명이 매년 갈리게 된다. 상당수 기업들은 아직도 대학 간판이나 학과를 보고 신입직원을 채용하고 있으며 의사와 같은 전문직은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면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수능 결과가 미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항공기는 듣기평가시간을 피해 운행하고, 주식시장은 시간을 늦춰 열린다. 긴장감을 갖지 말라고 말을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긴장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 듯하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긴장감은 그 결과가 좋든싫든 간에 오늘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전날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뒤흔든 지진은 수능 일정마저 뒤로 밀어내버렸다.

유통업계도 이런 상황에서 맥이 빠진 분위기가 역력하다. 유통업계에서 수능은 이른바 '소대목'으로 꼽힌다. 전통적인 쇼핑 비수기에 부모들이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머니를 여니 이보다 반가울 수는 없다. 그런데 포항 지진으로 '애프터 수능 마케팅'에 차질을 빚게 된 유통업체들은 규모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능일 몇 시간 전에 연기가 발표되면서 그동안의 준비가 헛수고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유통업계에서 수능 마케팅으로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나오기보다는 지진이 발생한 포항 지역에 대한 물품 지원과 구호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수험생들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허탈감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 주가 늦어진 게 아니라 한 주의 시간이 더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1주일 후에 수능은 다시 치러질 테고 유통업계의 수능 마케팅도 1주일이 지나면 다시 진행될 것이다. '그래봤자 수능, 그래도 수능'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실례일까.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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