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혁신성장, 백지상태서 해보자"는 제언

재계 맏형 격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에 '최근 경제 현안에 대한 제언집'을 전달했다. 16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다. 상의는 현장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합리적 해법을 찾기 위해 기업인들과 전문가 50여명의 견해를 모아 제언집을 만들었다. 소원 수리 형식으로 정부에 건의하던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박 회장은 기업인들의 자성과 분발이 필요하다며 반성문부터 썼다. 그러면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가 예상보다 좋아져 다행이지만, 갈 길이 숨이 찰 정도로 멀다"고 했다. 김 부총리는 "정부와 기업은 파트너다. 줄탁동기라는 말처럼 안에서 쪼고 밖에서 같이 쪼아야 알이 깨지듯이 정부와 기업이 함께 역할을 하자"고 화답했다. 이날 면담은 10여분에 그쳤지만 내용은 과거 어느 때보다 알찼다. 정부가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었으면 한다.

26쪽 분량의 제언집에는 재계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제언집은 우선 "다수의 정책이 늙은 기업의 연명을 돕도록 설계됐다. 잠재력이 큰 어린 기업이 성장하도록 정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는 "기업이 혁신에 나설 수 있도록 구시대적 노동시장 관행을 걷어내 달라"고 주문했다. 기업의 공공성에 대해서도 "정부가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면 자율성과 공공성을 모두 잃고 그에 따른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우려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얘기다. 정부가 새겨들었으면 한다.

이런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에도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한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 고용경직성,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바꿔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충고를 내놨다. 하지만 정치권은 과거의 낡은 틀에 갇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인터넷 은행의 금산분리 완화,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프리존법 등이 국회에서 수년째 발목이 잡힌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이다. 혁신과 성장을 이끌 현실적 대안을 백지상태에서 만들자"는 박 회장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사고로는 4차 산업혁명은 이해할 수 없다. 분초단위로 일이 나뉘고, 정부가 나서서 시간제 공무원을 뽑는 마당에 비정규직의 제로 정책을 들고 나온 게 단적인 예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