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공짜 야근'은 이제 그만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0 17:17

수정 2017.11.20 17:17

[기자수첩] '공짜 야근'은 이제 그만

대학 동기 가운데 만나서 밥을 먹으면 자기가 계산하는 녀석이 있다. 그건 나더러 커피를 사거나 다음번에 밥을 사라는 소리다. 매번 각자 내기가 불편해서다. 우리는 그걸 '퉁친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퉁'이 10여년간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누구도 학교 앞에서 백반을 사놓고 상대방에게는 소고기를 요구하지 않아서다. 소고기를 사달라고 했다면 우정도 장담할 수 없을 테다.
그래서 간혹 거하게 한잔 기울일 때면 퉁으로 치기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내려 한다. 퉁이란 관행은 우리에게 꽤 합리적인 수단이었다.

일부 기업에서도 임금으로 '퉁을 치는' 오랜 관행이 있다. '포괄임금제'다. 대한민국 노동자는 비몽사몽해도 야근을 자처하고, 쑥쑥 크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주말 역시 회사를 나오다보니 회사가 일일이 수당을 계산하기 복잡하다. 그래서 미리 일정액을 퉁쳐 수당으로 주거나 일정 수당을 아예 월급에 포함시켜 준다. 문제는 회사가 직원에게 백반 값을 주고 소고기 값만큼의 일을 시키는 게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포괄임금제가 '공짜 야근 제조기' '노예 계약'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회사가 1시간 수당을 주고 4시간 야근을 당연하듯 치부하니 '과로 자살'도 발생한다. 친구 사이라면 욕설이라도 한번 퍼붓겠지만 회사와의 관계에서 직원은 '종속적 관계'다. 불합리한 퉁침을 골자로 한 포괄임금 관행이 수십년간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연히 포괄임금제도 근로기준법에서 찾아볼 수 없다. 미래에 발생하는 야근을 미리 예측해서 임금으로 주는 게 쉬운 일인가. 수당이 발생하면 정확히 계산해 주는 게 우리 법의 취지다. 다만 대법원 판결에서 엄격한 기준을 두고 포괄임금제를 인정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기준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은 조건에서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포괄임금제를 마치 '직원 자유이용권'처럼 남용하지 말라는 취지다.


지난해 모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나간다는 소식을 메신저를 통해 들었지만 실제 얼굴은 더 울상이었다.
친구는 "주말에 일하는 것도 죽겠는데 야근시간을 계산하지도 않고 회사 마음대로 퉁쳐 버린다니까. 2시간 임금을 주고 4시간씩 부려먹는 거지". 백반 값을 주고 소고기를 사오라는 불합리한 관행, 이제는 바꿀 때도 됐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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