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中 사드 보복과 서희 외교

고압 외교로 길들이려는데 부드러운 설득만으론 부족
방어용 '큰 몽둥이'도 필수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은 내연(內燃) 중인가. 정부는 얼마 전 사드 추가배치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가입 및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3불(不)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행 단체관광 비자는 발급하지 않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문재인 대통령 면전에서 "한국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중국의 이런 고압적 외교를 '개집 접근 방식'(doghouse approach)에 빗댔다. 즉 "상대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바뀔 때까지 괴롭히고, 안 바뀌면 개집에 가둬 벌을 준다. 그래도 변하길 거부하면 적절한 처벌기간을 둔 후 개집에서 꺼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마워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드를 빌미로 한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 행태를 되짚어보면 그럴싸한 비유다.

하지만 어쩌랴. 중국은 반만년 역사를 통해 우리와 협력과 갈등을 변주해온 사이다. 대중 관계 설정은 늘 한국 외교의 숙명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로선 다시 팔뚝 힘을 키운 이 '이웃 공룡'의 실체 파악이 급선무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 주석이 내건 중국몽(中國夢)을 거칠게 해몽하면 대충 이렇다. 2050년엔 미국을 제치고 경제대국이 되고, 마침내 군사적 패권까지 쥐겠다는 것이다.

진작에 그럴 조짐은 감지됐다. 중국은 이미 국경을 맞댄 14개국 모두와 영토분쟁 중이다. 그러면서 독도를 넘보는 일본 못잖게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우리 영토에도 흑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 주변 4강의 '영토 야심'에 관한 한 '중국=일본>러시아>미국' 순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한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시 주석이 그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지향점은 우리의 민주공화정과는 거리가 멀다. 덩샤오핑이 고안한 집단지도체제를 버리고 마오쩌둥 시절의 1인 체제로 회귀할 낌새다. 소득이 늘면 필연적인 인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중화민족주의로 대리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이 우리를 괴롭혔던 한(漢).당(唐) 시절처럼 패권적 양상을 띨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이런 중국을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도우미로 끌어들인다는 게 쉬운 일일까. 고려 때 서희는 당시 대륙의 패권국이었던 거란을 상대로 화전 양면 외교의 진수를 보여줬다. 수십만의 대군과 맞서 전쟁은 피하고 강동6주까지 얻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다. 그 원동력을 그의 뛰어난 구변에서만 찾는 것은 단견이다. 고려 성종이 즉위 초기부터 압록강변에 성을 쌓는 등 거란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서희의 자주.실리 외교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먼 길을 가려면 부드러운 말(言)과 함께 큰 몽둥이도 들어라" 서아프리카 속담이다. 이를 원용한 외교술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이다. 그래서 일본과 군사동맹을 추구하지 않겠다며 중국을 달랜 것은 잘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드 추가배치 포기를 언명한 건 큰 패착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면서 아예 방어용 '작은 몽둥이'까지 내려놓았으니….

약세를 보이면 더 큰 굴종을 원하는 게 패권국의 속성이다. 자유민주제 통일이란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중국의 협력을 얻으려면 때론 전술적 양보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다만 부당한 주권침해 시 만만찮게 대응할 힘을 비축하면서 그럴 결기를 보여주는 것 또한 필수임을 잊어선 안 된다.

kby777@naver.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