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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정치논리 vs. 경제논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3 16:54

수정 2017.11.23 16:54

[여의나루] 정치논리 vs. 경제논리

지구촌에 현존하는 나라들 중에 북한과 같은 망나니 국가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나라라면 안으로 백성을 걱정하고 밖으로는 선린우호를 도모한다. 이런 나라의 대표들이 만나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함을 확인하게 되면 비록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더라도 우호협력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본가치가 조화롭고 균형되게 실현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는 정치라는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평등을, 또 하나는 시장이라는 구조 속에서 효율과 경쟁을 지향하다 보니 경제주체들 간에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할까.

장면1 : 2001년 시작했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잘 진행되던 중 우리 과수업계가 칠레산 사과·배가 특혜관세를 받으면서 수입돼 과수업계 피해가 나지 않도록 협정에서 배제해 달라는 요구가 대두됨에 따라 2년여 협상이 중단됐다가 결국 한국산 세탁기·냉장고와 맞교환으로 협정의 적용 자체에서 제외되었다. 칠레산 사과·배와 국내산 세탁기·냉장고는 누가 봐도 경제적으로 등가로 취급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과수업계의 설득은 불가능하지만 세탁기와 냉장고를 수출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능히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협상이 타결된 후 지금 한국산 세탁기는 칠레 시장에서 관세 감축 효과를 보고 들어오는 중국산 세탁기와 가격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면2 :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2000년대 초 국민의 정부 개방정책으로 우리나라 유통시장은 크게 개방됐고, 내로라하는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 유통업체가 진입해 왔으나 토종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보따리를 싸서 떠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국내 기업형마트와 골목상권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당연히 정치권은 상대적으로 약자이고 숫자는 훨씬 많은 골목상권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논의됐다. 기업형마트 진입을 금지하되, 처음에는 전통시장의 반경 500m 내로 논의되다가 결국 반경 1㎞로 확대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내 130여개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반경 1㎞의 원을 그려보면 남는 여백이 거의 없다. 골목상권 보호, 소비자 후생, 유통산업의 발전 그리고 대외적 개방 약속 등에 비추어 이 규제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장면3 : 2016년 하반기 트럼프 후보는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공업지대 근로자와 실업자들의 바짝 마른 가슴에 불을 붙였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그들의 생활을 피폐시켰다고 하면서. 지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시정하자고 우리나라에 맹렬히 요구하고 있다.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본인의 주장에 걸맞은 정치적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미국 실직(Job loss)의 70~80%는 무역이 아닌 공장 자동화 때문이라는 것을, 미국의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은 무역 자체가 아니라 생산보다는 소비가 그리고 저축보다는 투자가 큰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것을 그리고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5% 이상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임을.

정치는 더 큰 경제라는 말이 있다. 정치하는 분들에게 한껏 자부심을 갖게 하는 말이다.
많은 사회 현상과 갈등을 조화롭게 아울러가는 정치의 순기능이 발휘된다면 이 말은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지구촌 곳곳의 현실 정치는 갈등을 풀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 확보와 집권 또는 집권연장을 위해 확대재생산해 나가기 일쑤이다.
그래서 정치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당초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인가?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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