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개혁보수의 길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6 17:02

수정 2017.11.26 17:20

[데스크 칼럼] 개혁보수의 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생각보다 일찍, 출범 6개월 만에 국가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인사문제와 적폐청산, 북핵외교 등 일부 현안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비상식과 반칙이 지배하던 날림의 통치는 사라졌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었다. 소통정치의 복원과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각종 어젠다들도 본격 시행 중이다.

이런 연유로 문 대통령 지지율은 70%대 초반이라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지난 11월 21~23일 전국 성인 1001명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 '잘한다'고 지지한 비율이 72%로 파악됐다. '못한다'는 부정 평가 비율은 18%였다.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두 차례의 정권교체를 경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여당이 되고, 그 여당이 다시 야당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2차례 이상 정권교체를 경험하고 있다. 10년 주기로 진보와 보수정권으로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선거를 통해 공정한 정치적 경쟁을 벌이고, 이를 통해 국민주권주의에 부합하는 정치를 펼칠 때 한국 민주주의는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진보정권과 경쟁하는 보수가 튼튼하고 건전해져야 한다. 한국 정치의 큰아들인 보수가 변할 때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보수의 변화는 답답할 정도로 무디다. 문재인정부가 고공행진을 구가할 때 보수세력은 당 이름 바꾸고, 흩어졌던 일부 비박근혜 세력을 통합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에서 제명시킨 일 말고는 변화를 위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박정희 보수, 안보 보수, 기득권 보수에 다시 기대려는 관성이 너무나 크다.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환골탈태 대신 보수의 얼굴에 다시 분칠을 한 정도다.

보수는 현실을 냉정히 꼽씹어 보아야 한다. 이제 정치적 지형은 완전히 진보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는 광범위한 국가자원의 지원과 지역주의, 안보위기에 편승해 표를 쉽게 얻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의 보호막은 완전히 벗겨졌다. 보수를 지탱해왔던 국가의 광범위한 지원은 사라졌다. 보수는 이제 국가자원의 지원 없이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개혁 보수의 길'이라는 글을 통해 보수는 분단이데올로기와 쉬운 집권으로 경쟁력 없는 지배 엘리트 집단이 됐다며 보수의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의 보수가 일반적 기준에서 다른 나라의 보수보다 이념 좌표상 훨씬 오른쪽에 있어 이를 중앙 쪽으로 좀 더 옮겨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한국 보수의 변화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좀 더 수용해야 하고 둘째, 사회 최상층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 사회구성 원리를 대변해야 하며, 넷째, 남북관계에서 좀 더 평화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진보학자의 시각이라 해서 폄하하지 말고, 최 교수의 제안을 깊이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가 문재인정부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만 바라고, 성장 만능주의와 종북 이데올로기에 머무르고, 구체제의 지배블록을 복원하려고만 한다면 희망은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서 적당히 얼버무린다면 암 덩어리를 수술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혁신이라는 목소리가 사라지면 보수는 '진보 10년 집권플랜'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

조석장 정치부장·부국장 seokjang@fnnews.com 조석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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