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쌀 흉년이 반가운 이유

올 생산량 37년만에 최악인데 농민도 정부도 모두 시름 덜어
이런 모순 왜 왔는지 돌아봐야

박근혜정부 때 고통스러웠던 3가지가 있었다. 세금, 경제성장률 그리고 쌀이다. 박근혜정부는 세금이 잘 안 걷혀 쪼들리는 살림을 살았다. 여기저기 손 벌리는 곳이 많았지만 지원해줄 형편이 못됐다. 성장률도 2%대로 주저앉았다. 친기업 정책을 펴며 전력투구했지만 시장이 응답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쌀은 물정 모르고 매년 풍년이 들어 상황을 더 꼬이게 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3가지가 모두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세수부족은 세금풍년으로 바뀌고, 경제성장률은 3%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상향 조정했다. 이런 변화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인지, 아니면 타고난 운발인지는 아직 분간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쌀농사까지 흉년이 들었다. 정부의 무모한 쌀 증산정책이 낳은 4중고를 한방에 해결해준 '효자 흉년'이다. 4중고는 풍년이 들면 산지 쌀값이 폭락하고, 농가소득이 줄며, 재정부담이 늘어나고, 재고부담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흉년이 들어야 산지 쌀값이 안정되고, 농가소득이 증대되며, 정부는 예산이 절약되고, 재고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정상적 언어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쌀 농사는 흉년이 효자고, 풍년은 불효자다. 박근혜정부는 재임기간 내내 풍년이 들어 골치를 썩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첫해부터 흉년을 맞았다. 통계청이 집계한 올해 쌀 생산량은 397만2000t이다. 작년과 비교하면 5.3%, 2015년 대비로는 8.2%가 줄었다. 쌀 생산량이 400만t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80년(355만t) 이후 처음이다. 무려 37년 만의 흉년인 셈이다. 흉년이 들자 산지 쌀값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추석 전 80㎏당 13만원 선이었던 것이 15만원 선까지 올랐다. 농민들은 매년 수확기마다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올해는 그 모습도 사라졌다. 정부도 걱정을 덜었다. 연간 1조8000억원까지 불어난 직불금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과잉재고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 반가운 것은 재고쌀 처리 문제다. 정부 양곡창고에는 매년 과잉생산으로 소비되지 못한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다. 이 중에는 3년 이상 묵은 쌀도 수십만t이나 된다. 이런 쌀로 밥을 지으면 냄새가 심해 식용으로 쓸 수 없다. 그래서 3분의 1 값에 가축사료로 공급하고 있다. 3년간의 창고비와 재고쌀의 가치 하락분을 더하면 연간 수천억원이나 된다. 직불금 등 예산소요액과 농민시위 등 사회적 혼란에 따른 간접비용도 엄청나다.

37년 만에 찾아온 흉년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1조원짜리 흉년'이란 말도 들린다. 가뭄이 일등공신이었다. 흉년이 들었는데도 안도하는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럽다. 농정당국은 왜 이런 모순이 생겼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현행 직불금 제도는 과잉생산으로 쌀값이 떨어지면 하락분의 대부분을 정부가 보전해준다. 농민은 가격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소득이 늘어난다. 이런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내년에 또다시 극심한 가뭄이 오지 않는 한 풍년을 피하기 어렵다.
고장난 가격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직불금을 포함해 쌀 정책의 총체적 개혁이 시급하다. 어쨌거나 내년에는 귀한 쌀을 가축에게 먹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좋다. 흉년가라도 불러야 할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