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장관은 예산으로 말한다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7 17:13

수정 2017.11.27 22:45

[기자수첩] 장관은 예산으로 말한다

장관과 국회의원의 힘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부처와 지역구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끌어올 수 있느냐로 판가름된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를 출입할 당시 2017년도 예산을 사업별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9월에 정해진 정부 예산안과 12월에 확정된 국회안을 사업별로 비교해 봤다.

국회를 거치며 국토교통부의 전체 예산은 깎였지만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늘었다. 특히 선수(選數)가 높거나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에 예산이 많이 갔다. 당시 야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들어오는 고속철도 예산은 75억원에서 73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국토부 관계자조차 "부처에서 구체적인 계획도 잡히지 않은 사업인데 예산이 갑자기 늘어나 올해 안에 다 집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부처도 마찬가지다. 한 달 뒤 기자는 담당부서가 바뀌어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를 출입하게 됐다. 정부 출범 6개월 동안 장관이 없었던 중기부의 예산은 어떨까. 지난 8월 중기부에서 확정한 2018년도 예산안은 8조5793억원으로 중기청이었던 올해 예산보다 0.5%(426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문재인정부의 첫 예산안이 '슈퍼예산'이라고 불리는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청'이었던 때보다 더 홀대받은 것이다. 그나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9조2666억원으로 정부안보다 6873억원 끌어올렸다. 이는 올해 예산 대비 8.5% 증가한 수치로 체면치레만 했다.

예산은 반드시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그러나 부처별로 불필요한 사업이 어디 있으랴. 결국 부처의 힘, 장관의 힘에 따라 부처 예산도 달라지는 것이다.

홍종학 장관은 두 번의 대선(18.19대)에서 문재인 캠프의 정책을 총괄했던 핵심인사다. 홀대받던 중기부에 정권의 핵심인사가 온다는 소식에 업계도 많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너무 늦게 임명된 탓에 취임한 부처의 내년도 예산에 영향을 미칠 시간이 없었다. 홍 장관은 내년에 기획재정부와 국회가 짠 예산을 갖고 써야 한다.

홍 장관은 취임식에서 "우리나라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대변인이자 진정한 '수호천사'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수호천사는 말로만 되지 않는다.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내년 추경, 오는 2019년 예산은 홍 장관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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