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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페트로달러와 사우디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01 17:17

수정 2017.12.01 17:17

페트로달러:석유거래 화폐인 미국 달러
[월드리포트] 페트로달러와 사우디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시간30분 가까이 동안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연설을 했다.

행사에 참석한 91세 고령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하품을 하거나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것이 목격됐고, 시 주석의 연설이 끝나자 후진타오 전 주석도 시계를 가리키며 너무 오래했다는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은 이날 시 주석의 연설을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연설이 될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5세대(5G), 핀테크 기술 선점, 중국제조2025, 일대일로, 위안의 기축통화 등 5개가 모두 성취되는 날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게임은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자국화폐 위안의 기축통화 지위 자리를 노리면서 미국 달러를 밀어내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연말까지 상하이에서 원유선물 거래를 개시함으로써 석유거래 화폐인 미 달러, 즉 '페트로달러(petrodollar)'를 '페트로위안(petroyuan)'으로 밀어내겠다는 의도를 자주 드러냈다.


페트로달러 무너뜨리기에는 중국의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인 러시아도 가세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과 달리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국제유가를 좌우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러시아는 오는 2019년 말부터 길이가 3000㎞인 가스관을 통해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할 예정인데, 주목할 것은 두 나라가 달러가 아닌 위안이나 루블로 거래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또 사할린에서 일본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해저가스관을 건설 중이다. 이 가스관 건설로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을 대폭 줄이면서 화석연료가 다시 중요해진 일본과는 쿠릴열도를 둘러싼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됐다. 여기서도 러시아는 일본에 달러 대신 엔으로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 베네수엘라로부터는 위안으로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 끌어들이기도 시도하고 있다.

사우디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1975년부터 이어져온 '페트로달러'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유가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부채가 늘고 있는 사우디는 2030년까지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IPO) 계획도 발표했다. 여기의 가장 큰 투자자들은 중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아람코 상장을 이용해 사우디에 위안 거래를 수용하도록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도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다. 더우기 미국이 셰일석유 생산 급증으로 사우디로부터 수입하는 원유가 지난 30년래 최저수준까지 떨어져 중국시장을 경쟁 산유국인 러시아한테 빼앗길 수 없다. 달러로 석유거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973년 미국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우방국에 안보 우산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등은 자국화폐 가치를 미 달러에 고정시키는 페그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이란과 대립하고 있는 사우디가 과연 미국을 배신할지 주목된다.


페트로달러, 나아가 미국 달러의 지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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