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그 많던 주주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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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과 판박이다. 원숭이 쳇바퀴 돌듯 같은 말이 오간다. 섀도보팅(그림자투표)제 얘기다. 이 제도는 주주총회 성립요건이 까다로워 주총이 무산되는 것을 막으려 1991년 도입됐다. 주총에 불참한 주주는 참석 주주의 찬반 비율에 맞춰 반영한다. 하지만 대주주의 독단경영에 악용된다는 비판이 일자 2014년 폐지가 결정됐다가 3년 미뤘다.

금융위원회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기업을 비판하며 섀도보팅제를 폐지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연구용역에서도 의결정족수 완화 전까지 섀도보팅제를 유지하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요지부동이다. 재계는 억울하다. 그동안 주총 참석률을 높이려 상장사의 60% 가까이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야당 의원들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의사정족수를 낮추는 상법 개정안과 섀도보팅 폐지 유예 법안을 발의했지만 먼지만 앉는다.

대주주 의결권이 3%로 묶이는 감사 선임은 더 심각하다. 3%룰은 1주=1표라는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대주주 비중이 높을수록 애를 먹는다. 소액주주의 위임장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 상장사가 감사 선임 주총을 앞두고 위임장을 모으려 수천만원대의 대행사 계약을 맺는 이유다. 주주명부에는 성명과 주소밖에 나와 있지 않아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한밤중에 연락 없이 찾아온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은 물론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보면 다행이다. 주주명부 기재사항에 전화번호나 e메일주소를 추가하도록 상법 352조부터 손봐야 한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어렵게 주주를 만나도 이미 그 주주는 주식을 판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년 코스닥의 주식 회전율은 440%, 즉 1년에 네 번(2.7개월) 넘게 주주가 바뀐다. 최대주주 등 장기투자 지분을 빼면 실제 주식 보유기간은 길어야 1개월이다. 12월 결산 상장사의 경우 보통 연말까지 주식을 들고 있으면 배당과 주총 의결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주총은 3월에 주로 열린다. 주주명부와 실제 주주가 다른 이유다. 주식을 판 주주가 주총장까지 갈 일이 있을까. 한 표라도 아쉬운 기업만 속이 탈 뿐이다.

대주주 독주를 막겠다는 것도 철 지난 얘기다. 요즘은 소액주주운동이 활발해 주가가 떨어지면 경영진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의 오랜 요구로 코스피로 옮기는 셀트리온이 대표적이다. 대한방직은 지난주 소액주주들이 내세운 후보가 감사로 뽑혀 경영진을 감시한다.

현행 상법은 주총에 불참하는 주주의 권리를 강조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지난주 국회 섀도보팅제 개선 세미나에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주총에 불참한 주주는 기권인데 실제로는 반대표를 던진 것처럼 취급한다. 주총장에 나와 의사를 표시한 주주가치는 무시되고 불참자는 과대평가된다. 이런 게 정의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미국과 스위스.독일.스웨덴.네덜란드 등은 의사정족수 자체가 없다. 주주 한 명만 참석해도 다수결로 결정된다. 영국은 2명 이상이다.
정부가 섀도보팅제를 도입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섀도보팅제 유지는 땜질처방일 뿐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