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단체

[차장칼럼] 위장된 축복일까 명백한 불행일까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06 17:10

수정 2017.12.06 17:10

[차장칼럼] 위장된 축복일까 명백한 불행일까

위기로 가장된 축복! 이른바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은 화가 바뀌어 도리어 복이 되는 '전화위복'을 말한다.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머리에 자리 잡은 것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면서부터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사석에서 만나면 종종 '위장된 축복'을 말하곤 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2015년 아주대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중학교 때 청계천으로 이사가 열일곱 살 때부터 가장이 됐고, 강요받은 선택에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서 "당시 어려웠던 환경이 지금은 위장된 축복이었음을 알았고, 어려운 환경에 대한 반란이 일어날 때 발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즉 역경이 오면 힘들기 마련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을 키우는 자양분이나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결과론적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어려움들이 '위장된 축복'으로 여겨질 정도로 감사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조언이다.


최근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입속에 맴도는 것은 주요 대기업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정기관의 재계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 맏형인 삼성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구속된 이후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롯데는 신동빈 회장은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10년에 벌금 1000억원의 중형을 구형받았다. 이달 말 예정된 1심 선고공판이 다가오면서 롯데그룹 전체가 초긴장 상태다. 효성그룹은 지난달 또다시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현대자동차도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술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기술탈취' 논란에 휘말렸다. 현대차와 일하다 기술을 빼앗겼다는 중소기업 두 곳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검찰의 SK건설 주한미군기지 공사비리 관련 압수수색, GS홈쇼핑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뒷돈제공 압수수색, 경찰의 홈앤쇼핑 채용비리 의혹 수사 등 일일이 챙길 수 없을 정도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할 수 있는 '위장된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축복'이라는 느낌이다.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의 약진을 보면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 잠이 안 온다"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말이 절로 생각날 정도다.
전력 질주하는 글로벌 기업과 제자리 뛰기에도 버거워하는 한국 기업을 보고 있으니 지금의 사태가 '위장된 축복'이 될지, 아니면 '명백한 불행'으로 끝날지 그 결과가 두렵기만 하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산업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