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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0년 전 희귀 유물 '경성부 휘장' 수도덮개 발견

정용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2 10:10

수정 2017.12.12 12:23

경성부 '제2기 휘장' 남겨진 희귀한 유물... 본지 최초 확인
서울시 역사성 및 근대 수도 시설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될 것
용산구청, 서울시 문화재 등록 추진

▲(왼) 경성부-서울시의 휘장(심벌마크)은 총 네 차례 바궜다. 이중 제2기 휘장이 남겨진 수로 덮개, (오)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제4기 휘장이 남겨진 서울시 맨홀
▲(왼) 경성부-서울시의 휘장(심벌마크)은 총 네 차례 바궜다. 이중 제2기 휘장이 남겨진 수로 덮개, (오)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제4기 휘장이 남겨진 서울시 맨홀

▲성지영 서울시 용산구청 문화진흥팀 주무관과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경성부 배수 덮개'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성지영 서울시 용산구청 문화진흥팀 주무관과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경성부 배수 덮개'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일제강점기시대 서울의 옛 이름인 경성부 시대에 제작된 생활수도 덮개가 본지 취재진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 수도 덮개는 근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경성부 제2기 휘장(심벌마크)이 남겨진 몇 안되는 유물로 사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7일 성지영 서울시 용산구청 문화진흥팀 주무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과 동행해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 발견된 2기의 유물 상태와 그 가치성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경성부 제2기 휘장이 남겨진 유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1926년 경성부에서 배수 철관의 현황을 그린 ‘경성시가배수철관부설평면도’에 따르면 이 유물은 수도 확장 사업 3기인 1936년에서 1945년 사이에 설치된 ‘4촌 및 3촌급’ 수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도 덮개는 경성부의 휘장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지난 1926년 11월 제정된 이래 1947년 4월 1일까지 쓰였던 경성부 제2기 휘장이다. 경성부-서울시까지 이어진 역사에서 휘장은 총 4차례 변경됐다.

▲경성부-서울시로 이어진 휘장은 총 네 차례 바꿨다. 이 중 제1기과 제2기 휘장은 문서상 기록만 남겨 있었으며 실제 발견된 유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제2기 휘장이 남겨진 공공시설물을 발견된 것이다.
▲경성부-서울시로 이어진 휘장은 총 네 차례 바꿨다. 이 중 제1기과 제2기 휘장은 문서상 기록만 남겨 있었으며 실제 발견된 유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제2기 휘장이 남겨진 공공시설물을 발견된 것이다.

▲(왼) '동아일보' 1929년 9월 29일자에 보도된 경성부 제2기 휘장, (오) 1926년 제작된 '경성시가배수철관부설평명도'에서 후암동 일대를 볼 수 있다. 이 지도에서 후암동의 배수철관은 만초천(현재는 복개)으로 향하고 있다.
▲(왼) '동아일보' 1929년 9월 29일자에 보도된 경성부 제2기 휘장, (오) 1926년 제작된 '경성시가배수철관부설평명도'에서 후암동 일대를 볼 수 있다. 이 지도에서 후암동의 배수철관은 만초천(현재는 복개)으로 향하고 있다.

제2기 휘장은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포함돼 있다. 당시 경성부는 새로운 휘장을 제정하면서 전국 시민 공모에 부쳤다.

그 결과 조선·일본·만주 등지에서 모두 483명이 932점의 작품을 응모해 경성부 대화정(현재 필동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다우치 씨가 당선됐으며 상금은 1백원을 받았다. 이 내용은 <동아일보> 1926년 9월 26일 신문에 비교적 상세히 보도됐다.

이 수도 덮개는 근대 수도 기술 및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사료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 역사는 1908년 세워진 성동구 ‘뚝섬수원제 제1정수장’(현 수도박물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2호)에서 시작됐다. 이 정수장은 서울에 최초로 건립된 상수도 수원지 정수장 건물로 한강에서 끌어올린 물을 침전·여과·정수 과정을 거쳐 경성부 시내와 용산 일대로 급수했다.

당시 설치돼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서울시 기념문화재 제38호, 2014년 7월 3일 지정),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서울시 기념문화재 제39호, 2014년 7월 3일 지정),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서울시 기념문화재 제41호, 2015년 3월 19일 지정)등 3기로 최근 근대 수도 시설의 역사성을 인정해 서울특별시 기념문화재로 잇따라 등재됐다. 이와 더불어 이번 수도 덮개까지 문화재로 등재된다면 학술적 연관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갈수록 도시 브랜드 사업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용산구는 용산미군기지 반환과 맞물려 후암동 일대의 스토리텔링 소재로 삼아 지역사회 발전에 일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천수 향토사학자는 “그동안 근대문화유적은 삼국·고려·조선 시대의 유적에 밀려 그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거의 방치돼왔다. 언제까지 아픈 역사라고 내버려 두기만 할 건가”라면서 “이번 발견은 근대 서울 역사뿐만 아니라 수도 기술 및 생활사 관련 용산지역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 틀림없다”라고 밝혔다.


용산구청은 이번에 발견된 1930년대 경성부 휘장이 남겨진 수도 덮개 2기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고 서울특별시 기념물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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