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비트코인과 봉숭아학당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2 17:00

수정 2017.12.12 17:00

[차장칼럼] 비트코인과 봉숭아학당

오랫동안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봉숭아 학당'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는 한 시골학교 교실을 무대로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황당한 얘기들을 늘어놓으며 수업시간을 엉망으로 만드는 내용이다.

캐릭터들도 강렬했지만, 이들이 주고받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대부분 말도 안되는 개인사들을 풀어놓는데, 자기 얘기만 할 뿐 상대방 말은 아예 듣지도 않는다. 매번 그날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 논쟁만 벌이다 수업이 끝나는데, 마치 무엇을 풍자한 것 같기도 했다. 꽤나 인기를 끌었던 코너였다.


요즘에 비트코인이라는 네 글자가 뜨거운 화제다. 한동안 신문 지상을 도배하던 대통령 이야기도,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던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이야기도 최근에는 모두 비트코인에 한 수 접어줘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가 비트코인 거래량으로 세계 3위 수준인데 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웬만한 뉴스는 뒷전으로 밀릴 만도 하다.

지난 9월에 몇개 부처가 모여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라는 걸 만들었다. 비트코인을 어느 부서 관할로 떠넘길지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솔직히 그간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였다.

최근 총리가 가상화폐에 대해 '우려'한다는 한마디를 던지자 이분들이 상당히 바빠졌다. 속된 말로 뭐라도 당장 내놔야 하는 상황인데, 뒷얘기들을 들어보면 썩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금융위원회는 가상화폐를 절대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데 국세청은 일단 세금부터 때리자고 하고, 법무부는 그냥 막아버리면 될 일을 왜 이리 복잡하게 하느냐고 나무라는 식이다. 발행기관도 없고 국적도 없는 이 신종 화폐에 이 나라 내로라하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 모든 소동은 비트코인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선 존재이기 때문다. 지금 공무원들이 열심히 행정고시 준비하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사람들은 낯선 것을 마주하면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결국 밀어내려고 한다. 중세시대에 지동설이 나왔을 때 어땠는지 보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에 정면으로 찬물을 끼얹는 이 주장에 로마 교황청은 당황하면서 덮어놓고 탄압하기 바빴다.

얼마 전에 한 증권사 관계자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 증권사가 비트코인 관련 신규사업을 준비하다 정부부처로부터 '야단'을 맞고 일을 접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여의도에 파다하게 퍼지자 최근 비트코인 관련 세미나를 준비하던 증권사 두 곳이 돌연 행사를 취소했다.
굳이 그럴 것까지 있느냐고 하자 '알아서 기어야 할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쪽(정부)에서도 정리가 안돼 난리인데, 행여 튀는 짓 하다가 돌 맞으면 개구리는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단 것이다.
봉숭아학당인 줄 알았는데, 역시 정부부처는 만만히 볼 분들이 아닌가 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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