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626 홈런’ 이승엽의 아름다운 이별

프로 직행 23년 대장정 마감
골든글러브 10회 최다 수상
한국 야구 전설로 자리매김

이승엽이 13일 선수로는 마지막 행사인 '2017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했다. 지난 10월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이승엽이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양대는 스카우트에서만큼 프로보다 강했다. 정민태(당시 동산고)를 둘러싼 태평양 돌핀스(당시)와의 피 말리는 승부, OB(현 두산)와 주고받은 강혁(당시 신일고) 줄다리기, 빙그레(현 한화)와 맞붙은 구대성(당시 대전고) 쟁탈전, 해태(현 KIA)를 울린 오희주(당시 광주 진흥고) 빼내기 등등.

한양대는 고교야구 최대어들을 잇달아 낚아올리며 프로팀들을 울렸다. 그런 한양대가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실패 사례가 하나 있다. 이승엽(당시 경북고)을 삼성에 빼앗긴 아픔이다. 한양대는 고교 최대어 이승엽을 거의 손에 쥐었다. 뜰채로 떠올리려는 순간 기적처럼 고기가 튀어올랐다.

유명한 이승엽의 수능 37.5점 사건이다. 이승엽은 1994년 11월 23일 실시된 수능시험에서 고의로 낙제점을 받았다. 이승엽의 한양대 입학은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다만 수능이라는 절차만 남겨놓았을 뿐.

그러나 이승엽은 비장의 카드를 숨겨놓고 있었다.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프로행을 원했던 이승엽은 고의로 수능을 망치는 자해를 단행했다. 합격점(40점)에 2.5점 모자라 결국 대학입학 자격을 얻지 못했다. 삼성으로선 그물을 빠져나간 고기가 제 발로 다시 헤엄쳐 들어온 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승엽의 23년 대장정이 13일로 마감됐다. 1995년 삼성 입단 이후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전설의 역사를 써왔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159개) 포함 모두 62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국내서만 467개를 때려냈다. 어쩌면 이후 영원히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이승엽은 올해 KBO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가졌다. 41세 이승엽은 타율 2할8푼, 홈런 24개, 타점 87개를 남겼다. 그리고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승엽은 13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했다. 선수 자격으로는 마지막 행사였다. 그는 이미 10차례나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이 또한 넘지 못할 벽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2위는 한대화와 양준혁의 8회.

이승엽이 8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서 외유를 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은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선수는 누구나 다치거나 슬럼프를 경험할 수 있다. 국내에서 15년을 뛰면서 10번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신인 시절 두 차례, 마흔 살 이후 두 차례를 제외하면 사실상 매년 그 자리를 차지해온 셈이다.

이승엽의 지명타자 부문 경쟁자는 나지완(32·KIA)과 박용택(38·LG)이었다. 나지완은 홈런(27개)에서, 박용택은 타율(0.344)에서 각각 이승엽을 앞섰다.
40대 초반의 은퇴를 앞둔 선수가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한해였다. 이제 야구선수 이승엽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를 결코 마음속에서 지울 수는 없다.

texan5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