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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생전 장례식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4 17:17

수정 2017.12.14 17:17

교육자이자 수필가인 남곡 이병희는 달포 전 서울의 어느 미술관에서 자신의 세 번째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내가 죽으면 문상객들이 부조금 들고 찾아 오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와봐야 나를 볼 수도 없을 텐데."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1000분 정도의 지인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고 죽겠다는 생각으로 생전 장례식 계획을 세웠다. 한 번에 200명씩 다섯 차례로 나눴고, 그중 세 번째를 마쳤다.

세상과 멋진 이별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은 예고 없이 닥치는 것이어서 인간의 뜻대로 안 된다.
하지만 죽음을 예상하고 세상과 어떻게 이별할 것인지를 미리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터부시하는 관습 때문이다.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중환자실에 드러누워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쯤 아차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관습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내 몸이 살아 있고, 아직 정신이 총총할 때 장례식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 '생전 장례식'이다.

요즈음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 화제다. 건설기계 제작업체 고마쓰의 사장을 지낸 안자키 사토루(80)는 지난 11일 도쿄시내 한 호텔에서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 '감사의 모임'이란 이름이 붙은 장례식에는 지인 1000여명이 모였다. 그는 두 달 전쯤 암이 발견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신문에 자신의 생전 장례식을 알리는 광고를 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참석자 모두에게 일일이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남은 수명은 오직 신만이 알겠지만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단히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어떻게 세상과 작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어렴풋이 생각이야 하겠지만 실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세상에서 고마웠습니다." 생전에 지인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런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멋진 이별이지 않겠는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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