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올림픽의 추억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7 17:00

수정 2017.12.19 14:42

[데스크 칼럼] 올림픽의 추억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올림픽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다. 그해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따낸 첫 금메달이다. 흑백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더욱 강렬하게 남아있는 경기는 동메달을 딴 여자배구다.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예선에서 쿠바, 동독을 연파하고 준결승에 오른 뒤 일본에 져 3~4위 결정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우리보다 평균 신장이 10㎝나 더 큰 헝가리였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강스파이크를 펑펑 날리며 헝가리를 3-1로 꺾었다. 구기종목 최초이자 여성 스포츠 분야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조혜정, 유경화, 변경자 등 당시 승리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은 아마도 지금쯤 60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다음 두 번의 올림픽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반쪽짜리 대회였다. 대한민국은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고, 1984년 LA 올림픽에선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금 6, 은 6, 동 7개로 사상 처음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레슬링의 김원기, 유도의 하형주, 양궁의 서향순, 농구의 박찬숙 등이 1984년을 빛낸 스타 플레이어들이다.

그리고 대망의 88서울올림픽. 누구나 그런 것처럼 내 기억 속에도 개막식에 등장했던 굴렁쇠 소년이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저장돼 있다. 광활한 잠실벌에 한 점으로 나타나 정적을 뚫고 전진하는 소년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하나로 모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어 서울 하늘 아래 울려퍼진 그룹 '코리아나'의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정말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덥석 잡아야 할 만큼 강렬한 사운드와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그해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 12, 은 10, 동 11개를 목에 걸며 종합순위 4위에 올랐다.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나온 건 1992년 알베르빌 대회였다. '스케이트 날 들이밀기'라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인 김기훈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그해 공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쇼트트랙 남자 1000m에 이어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 이후 쇼트트랙은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버팀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첫 메달이 나온 1992년 알베르빌부터 2014년 소치까지 금메달만 21개를 획득했고, 은메달(12개)과 동메달(9개)까지 합하면 쇼트트랙이 지금까지 수확한 메달 수만 42개에 이른다. 이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에서 딴 전체 메달(53개)의 80%에 해당한다. 김기훈,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 진선유, 이정수, 박승희, 심석희 등 쇼트트랙이 낳은 스포츠 영웅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대회다. 쇼트트랙을 제외한 종목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당시로선 최고 점수인 228.56점으로 당당히 '피겨퀸'에 등극했고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 3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중 여자 500m의 이상화는 2010년에 이어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2연패에 성공했다.

이제 다음 차례는 내년 2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 시간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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