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 주말 아침, 커피를 내리며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8 16:59

수정 2017.12.18 16:59

[윤중로] 주말 아침, 커피를 내리며

'스륵, 타닥탁탁탁….'

커피 그라인더를 돌리는 손길 사이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듯 1년여를 고이 간직한 진한 향기가 부서져 피어오른다. 주말을 보내는 시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타임'을 알리는 소리다. 매번 딱딱한 커피 알갱이를 갈아내는 게 다소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신선한 커피향을 천천히 음미하는 행복은 그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뜨겁고 가는 물줄기가 잘 부풀어오른 '모카번' 같은 커피가루를 파고 든다. '또옥똑, 주르륵'. '고갱이' 같은 진한 커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잘 추출된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아침 햇살이 나른하게 비치는 주방에 서서 직접 커피를 내리는 순간도 못지않은 행복이다.
여기에 거실 한편에서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라도 흘러나오면 그 행복감은 더욱 솟구친다.

지금 커피 예찬을 늘어놓는 나를 비롯해 세계인 모두가 즐기는 커피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기호품이다. 서기 600년께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밤기도를 올리던 중 가브리엘 대천사가 졸음을 쫓기 위해 전해준 열매가 커피였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지만 전쟁과 함께 예멘으로 전해진 커피는 이슬람 사원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귀한 약으로 쓰였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수출할 때는 나중에 발아되지 못하게 커피콩을 삶거나 볶아서 수출했다. 그런데 열매를 씹어먹는 것보다 볶은 커피를 갈아서 물에 타먹으니 더 맛이 좋았다. 오늘날 커피 형태가 생기게 된 계기다.

1453년 커피가 지중해를 건넜다. 오스만이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면서 유럽이라는 새로운 땅을 밟은 것이다. 커피 맛을 접한 유럽인들은 열광했다. 그러자 아랍에서 커피 무역을 독점하던 계산 빠른 유대인들이 갑자기 수출을 통제했다. 예멘의 모카에서만 수출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다. 아랍은 물론 아프리카의 모든 커피들이 모카로 모였다. 오늘날 광고 카피에도 많이 언급되는 '카페 모카'가 여기서 비롯됐다. 사실 모카커피는 맛이 좋았다.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종인 탓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나는 커피와 달리 쓴맛이 덜하고 초콜릿 향도 살짝 났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난 커피도 모카커피처럼 보이기 위해 초콜릿향을 첨가하기도 했다. 오늘날 커피숍 메뉴에서 모카 이름이 들어간 커피에 초콜릿이 들어가는 이유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주곤 한다.
커피와 관련해 변변한 강의조차 들은 적이 없지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만의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그래도 제법 훌륭한 맛을 낼 줄 안다. 오늘은 미끌미끌하게 혀를 감싸는 고급스러운 질감과 기름진 향이 일품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내린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있지만 시간적, 물리적 제약 때문에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얼굴들이 유독 더 생각나는 아침이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