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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번 기회에 채용비리 뿌리 뽑아야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8 17:00

수정 2017.12.18 17:00

[기자수첩] 이번 기회에 채용비리 뿌리 뽑아야

2005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따뜻한 봄바람이 솔솔 불고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남쪽 도시, 창원이었다. 창원시청 로터리에서 경남도청까지 이어지는 8차선 도로 왼편엔 한국토지공사 사옥이 있었고, 그 건물 2층은 근로복지공단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 공단의 '비품'으로 국방의 의무를 시작했다. 공단엔 보상부, 징수부, 관리부 등의 부서가 있었는데, 각 부서마다 나 같은 공익근무요원과 비정규직 직원들이 둘, 셋 이상 일했다. 내가 속한 징수부엔 내 손위누이 또래의 J와 P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차장 책상을 머리로 치면 꼬리에 J와 P 그리고 내 책상이 배치됐다. 자연스럽게 이들과 손발을 맞출 일이 잦았다.

이듬해 어느 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 달 남짓 후 시험을 통과하는 조건이었다. 여남은 명의 비정규직이 경쟁관계가 됐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J와 함께 징수부에 있던 P가 급작스럽게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낮은 관리부로 발령이 났다. P는 근거를 알 수 없는 휴가까지 얻어냈다. 반면 J는 점심시간 순두부찌개 앞에서 "나는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피곤에 쩔어 있던 J의 눈가에 결국 화장이 번졌다. 탕비실 수군거림 속에서 P가 유관 공공기관장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시험 후, 정말 둘의 운명은 갈렸다. J는 직장을 잃고 고향 진주로 떠났고 P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발랄하게 출근했다.

문재인정부가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전수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비리 건수가 무려 2234건에 달했다. 부당한 평가기준을 적용하거나 선발인원을 변경한 사례가 무더기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고위인사가 외부 인사청탁을 받고 공식 채용절차 없이 특정인을 부당 채용한 사례도 많았다. 결과 발표를 보면서 'J는 공부할 시간이 있었더라도 정규직 전환은 어려웠겠다' 싶었다. 당시의 '시험'이 '요식행위'였을 것이란 의심도 들었다. J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부할 시간'이 아니라 '고위인사의 인사청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J도 당시에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늦게나마 정부가 채용비리에 대해 전수조사를 시작한 덕분이다.
J와 같은 이들이 얼마든지 '제보'를 할 수 있다. 정부가 J가 흘린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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