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정부 몸집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0 16:42

수정 2017.12.20 16:45

그리스식 경로 답습 곤란.. 공무원 증원은 임시방편
민간고용 늘리는 게 정도
[구본영 칼럼] 정부 몸집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사회에서 한 세기를 넘기고도 여전한 핫 이슈가 있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끈 뉴딜정책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다. '큰 정부론'을 신봉하는 이들은 미 정부가 시장을 규제해 공황을 극복했다고 본다. 실업자 구제를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은 존 M 케인스식 유효수요 창출에 주효했다고 믿는다.

반면 뉴딜이 "정부 재정과 기업의 경제자유도를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미국 경제를 망쳤다"(로버트 P 머피, '대공황과 뉴딜정책 바로알기')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심지어 유효수요 창출의 일등공신은 뉴딜정책이 아니라 군수물자 등 2차대전 특수일 뿐이라는 말도 있다.
'작은 정부론'에 입각한 분석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에서 11월 청년실업률이 9.2%로 월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등 환란의 그늘이 짙었던 1999년 11월의 8.8%를 넘어섰다. 대선 때 '21세기 한국형 일자리 뉴딜정책'을 공약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한 정부가 받아든 초라한 성적표다.

전반적인 취업 한파 속에서 취업자가 빠르게 늘어난 부문은 있었다. 공공행정 및 국방.사회보장행정 분야 취업자가 한해 전보다 8.4% 늘어난 것이다. 추경예산을 통한 공공부문 임시인력 증원에 힘입은 결과다. 그럼에도 청년층을 포함해 전 연령층의 전체 취업자수가 되레 감소하고 있다면? 공무원 증원을 마중물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책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얘기다.

왜 그럴까. 공공부문 인력을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걷으면 결국 산업현장의 활력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고용난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얼마 전 아누프 싱 미 조지타운대 교수도 "고용창출은 중요한 이슈이지만 고용은 민간부문에서 나와야 한다"고 충고했을 법하다. 2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청년실업 해소 대안으로 '혁신을 위한 동태적 기업 성장 환경' 조성을 강조한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원인 그리스가 재작년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근원적 배경을 되짚어 보라. 수십년간 포퓰리즘 복지 경쟁을 벌여온 좌우파 정당들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득표전략으로 삼으면서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지각하지 않고 제 시간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에게 '정시 수당'까지 쥐여줄 정도였으니…. 그러니 재정이 고갈되지 않을 턱이 없었다. 공공부문 인력을 늘려 손쉽게 실업률을 낮추려다 부메랑을 맞은 소름 돋는 사례다.

우리가 그리스의 경로를 답습할 이유는 없다. 혹자는 한국은 공공부문 고용비율이 OECD 평균치(21.3%)에 비해 적은 8.9%(2015년 기준)라고 반론을 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유럽국들 통계와 달리 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학교 교원 등을 제외한 수치다. 한국은 일반 정부지출 중 공무원 보수 지급에 쓰인 비율이 21%(2014년 기준)로, OECD 평균(23%)과 별 차이가 없다.


뉴딜정책 이후 미 역대 정부에서 '큰 정부론'과 '작은 정부론'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설령 '큰 정부론'이 맞다손 치더라도 정부의 '역할'을 키워야지 '몸집' 그 자체가 비대해져선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재정으로 민간을 키운 일본에서 요즘 청년 취업난이 아니라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고 있는 데서도 확인되는 명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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