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한국형 요즈마펀드는 공염불?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1 14:31

수정 2017.12.21 14:31

[기자수첩]한국형 요즈마펀드는 공염불?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에만 관심있을 뿐 투자대상 기업의 버블로 인한 폐해는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앞으로 3년간 10조원 규모 혁신모험펀드를 결성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한 투자은행(IB)과 벤처캐피탈(VC)의 반응이다. 자금이 시장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풀리고, 너도나도 투자자로 나서는 데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당초 정부는 대규모 자금이 시장으로 들어가면 빠른 시간내 청년 고용과 신규 먹거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덕분에 내년 신규 투자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투자 대상기업의 가치가 뻥튀기돼 투자 후 회수하는 시기의 불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3~4년 후 부실기업이라는 부메랑을 피하기 위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한 국내 사모펀드(PEF)는 내년 투자를 보류했고, 연기금과 공제회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해졌다. VC업계에서는 닷컴버블 때 한번 당한 만큼 이번에는 빗장을 걸어 잠그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투자기업의 가치가 고평가된 만큼 기존 투자분에 대한 회수라는 과실만 따먹겠다는 계획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때도 창조경제라는 명목으로 벤처기업에 정책자금을 공급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1993년 조성해 큰 효과를 거둔 요즈마펀드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투자실적은 미미했고, 그 마저도 국제 브로커들의 농간에 손실을 봤다는 말이 나온다.

‘늦을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청년실업과 4차산업혁명 등 변화에 대응해야 하지만 조바심을 내면 효과는커녕 일만 그르칠 수 있다. 요즈마펀드도 처음부터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시장이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는 씨를 뿌리는 기간을 견뎠다. 요즈마펀드보다 성공 투자에 대한 경험이 미진한 우리로서는 인내와 신중함이 더 필요하다.

나무가 빨리 크게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중후장대 산업에서 벗어나 혁신 기업의 생태계로 만들겠다는 취지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그 속도에는 문제가 있다.
이대로라면 정책자금에 달린 눈먼돈이라는 꼬리표는 고착화 될 뿐이다. 누구보다도 돈의 흐름에 민감한 시장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고, 조급증을 버리자. 이번 정부에 다 못하면 다음 정부에 이어서 하면 된다.
‘결과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정부의 포부는 벌써 빛바랜 사진인가 아닌가. 결과는 오롯이 정부의 결단에 달렸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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