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한국형 요즈마펀드 공염불 되나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1 17:18

수정 2017.12.21 17:18

[기자수첩] 한국형 요즈마펀드 공염불 되나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에만 관심 있을 뿐 투자대상 기업의 버블로 인한 폐해는 생각지도 않는 것 같다."

앞으로 3년간 10조원 규모 혁신모험펀드를 결성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한 투자은행(IB)과 벤처캐피털(VC)의 반응이다. 자금이 시장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풀리고, 너도나도 투자자로 나서는 데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당초 정부는 대규모 자금이 시장으로 들어가면 빠른 시간 내 청년 고용과 신규 먹거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덕분에 내년 신규 투자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가 뻥튀기돼 투자 후 회수하는 시기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3~4년 후 부실기업이라는 부메랑을 피하기 위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한 국내 사모펀드(PEF)는 내년 투자를 보류했고, 연기금과 공제회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해졌다. VC업계에서는 닷컴버블 때 한번 당한 만큼 이번에는 빗장을 걸어 잠그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근혜정부 때도 창조경제라는 명목으로 벤처기업에 정책자금을 공급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1993년 조성해 큰 효과를 거둔 요즈마펀드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투자실적은 미미했고, 그마저도 국제 브로커들의 농간에 손실을 봤다는 말이 나온다.

'늦을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청년실업과 4차 산업혁명 등 변화에 대응해야 하지만 조바심을 내면 효과는커녕 일만 그르칠 수 있다. 요즈마펀드도 처음부터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시장이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는 씨를 뿌리는 기간을 견뎠다.

나무가 빨리 크게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중후장대 산업에서 벗어나 혁신기업의 생태계로 만들겠다는 취지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그 속도에는 문제가 있다.
이대로라면 정책자금에 달린 눈먼돈이라는 꼬리표는 고착화될 뿐이다. 누구보다도 돈의 흐름에 민감한 시장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고, 조급증을 버리자. 이번 정부에 다 못하면 다음 정부에 이어서 하면 된다.
'결과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정부의 포부는 벌써 빛바랜 사진인가 아닌가. 결과는 오롯이 정부의 결단에 달렸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