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금융당국과 금융지주사의 신경전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1 17:18

수정 2017.12.21 17:18

[기자수첩] 금융당국과 금융지주사의 신경전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세계적인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거친 말폭탄을 주고받은 후다. 그의 의도는 명확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가감 없이 위협을 주고받을 동안 서민들의 일상은 두려움에 물든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과 금융지주사 수장의 설전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셀프 연임' '참호 속 인사'와 같은 말들이 그대로 생중계되고, 해당 지주사도 '관치' '뒤를 흔드는 세력이 있다'는 말로 맞받아쳤다. 양쪽 모두 서슬이 시퍼렇다.

이 과정에서 시들어가는 건 은행 혹은 금융지주사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최근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언제쯤 끝날까요?"라는 질문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당국과 특정 지주사의 신경전이 장기화되면서 금융권 전체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우려도 비슷하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라는 말 속엔 해당 지주사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숨어 있다. 이런 감정은 일선 지점까지 퍼져간다.

당국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하다. 내뱉는 말들은 험한데 정작 어디를 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선다. 최흥식 금감원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친분, 김승유 전 회장과 김정태 현 회장의 불편한 관계 등을 걷어내고 봐달라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세상에 순수한 개혁이 존재하긴 할까. 역사상 모든 개혁은 '필요'에 의해 일어났다.

일련의 사태들은 금융당국의 정당한 시도마저 빛바래게 한다. 채용비리 검사처럼 응당 해야 하는 일에도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새어나온다. 게다가 지금은 은행들이 연말 임원인사를 앞두고 있다. 오해받기 딱 좋은 시점이다. 민간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이 시대착오란 것을 당국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차마 칼을 쓰지 못하고 망치로 전체를 두드리고 있다. 내년도 전략을 짜고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 두드려맞을세라 모두 엎드려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은 모험정신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따져볼 일이다.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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