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감세의 정치학

"미국 국민 모두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햄버거는 부자만 먹고, 중산층 이하는 샐러드나 감자튀김 같은 사이드메뉴만 먹는 꼴."

미국 의회가 31년 만의 최대 규모 감세안을 지난 20일(현지시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지난 1월 취임 후 사실상 첫 '입법 승리'다. 오바마케어 폐기 시도가 공화당의 내부분열로 잇따라 실패하고 국경 장벽건설, 이민개혁 등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어젠다'가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악재가 겹치고 있는 공화당으로서는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황금카드'를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

중간선거는 국정 주도권의 향배를 결정할 뿐 아니라 대통령 재임 도전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명운이 걸린 승부처다. 특히 하원 435석 전체와 상원 100석 중 34석이 걸려 있는 내년 중간선거는 민주당이 하원에선 24석, 상원에선 2석만 더 가져가면 다수당 자리를 공화당에서 빼앗을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걸 감안해 이번 세제개편안을 통과시킨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선거 승리로 가는 '강력한 덩크슛'을 넣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감세는 유권자에게 분명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봤을 때 감세는 당에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기도, 전혀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한 가지 뚜렷한 사례가 1948년 미국 연방세입법(Revenue Act)이다. 미국 역사상 세번째로 큰 감세안이지만 이 법안을 밀어붙였던 공화당은 대선에서 패배했고 의회 다수당 자리를 민주당에 내줬다. 이유가 뭘까. 1946년 공화당은 추가 감세를 공약하며 중간선거에 승리했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차지했다. 승리에 도취된 공화당 지도부는 개인소득세율 인하 및 세액공제 확대 등을 담은 연방세입법을 마련해 당시 민주당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1948년 4월 의회를 통과시켰다. 공화당은 선거 승리를 낙관했고 여론조사에서도 공화당은 민주당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깜짝 반전이 일어났다. 그해 11월 선거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하고 공화당은 하원에서 75석, 상원에서 9석을 잃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내준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에게 '감세의 정치학'에 관한 세 가지 교훈을 준다. 감세는 유권자에게 중요한 이슈지만 최우선 이슈는 아니라는 점, 감세 자체보다 누가 더 큰 감세혜택을 보느냐는 '분배의 문제'가 유권자에게 더 중요하다는 점, 세제개편은 선거 승리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감세혜택이 모든 소득계층에 공평하게 돌아가는지 의문을 가졌고,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시대 초기였기 때문에 군사지출과 공공외교 지출 확대를 위한 증세를 감당할 용의도 있었다. 감세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유일한 요소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부자와 기업들을 위한 감세'인지, 현재 순항하고 있는 미국 경제상황에서 감세가 최우선 이슈인지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은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벌써부터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 '부자감세'라는 딱지를 붙이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네바다, 애리조나, 인디애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같은 핵심 주들에서 재생되는 유튜브 영상에는 "기업 세금은 엄청나게 깎아주면서 중산층 가구엔 세금을 올리는 개편안"이라는 내용의 민주당 광고가 따라붙고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