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최저임금의 역습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4 18:43

수정 2017.12.24 18:43

[데스크 칼럼] 최저임금의 역습

연이은 송년 모임 등으로 지친 속을 풀 겸 그저께 회사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 대구탕이 주메뉴인 이 식당은 추운 날씨에 뜨끈한 대구탕 한 그릇이면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아 자주 찾는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니 가격이 20%나 올랐다. 계산대의 주인에게 물어보니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한 것이란다. 이게 아니라도 동네 식당이나 식음료 전문점 등을 중심으로 메뉴 가격이 줄줄이 오른다. 새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앞두고 세밑부터 '최저임금의 역습'이 시작됐다.


새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부터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새해에 최저임금을 16.4%나 대폭 인상키로 했기 때문이다. 17년 만의 최고 인상률로, 최근 5년간 평균인상률의 2.2배를 넘는 급격한 인상이다.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몇 갑절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인해 그동안 최저임금 수준에 걸려 있던 수백만명의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이머 등 저임금 근로자들은 월 소득이 22만원가량 오른다. 정부 의도대로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득 상위계층의 월급을 밀어올리고 이것이 내수활성화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분배 성장정책에 힘을 싣어줄 수 있다.

전제는 최저임금 사업장이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상황은 녹록지가 않다. 최저임금 사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계기업이나 식음료점 등 일반 영세자영업자나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이 현재의 영업환경 아래에서는 오른 만큼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구조다. 그러니 인건비 부담 증가를 감당하기 힘든 영세기업들은 인력을 줄이든가 근무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위주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업종 특성에 따라 가격인상이나 무인화, 자동화, 효율화 등 사람을 덜 쓰는 방법을 찾는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벌써 식당 등 식음료 가게를 중심으로 가격인상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선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도 인건비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 설렁탕이나 떡볶이 등의 판매가격을 올려달라고 본부에 요청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식음료 전문점들은 일단 가격인상으로 맞섰다. 일부 편의점이 무인점포를 시범 운영하고, 자판기를 통해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사는 무인정육점과 1인 창업이 가능한 반찬가게 등의 프랜차이즈도 등장했다.

최저임금 사업장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기대하기는커녕 근로시간 단축으로 되레 수입이 줄거나 아예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최저임금법의 핵심 취지는 저임금 해소로 임금격차를 줄이고 소득분배를 통해 근로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소득분배 개선과 함께 생계보장 및 생활안정이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들의 일터가 없어진다면 근로자 생계와 생활안정은 지켜지지 않고, 최저임금의 취지는 퇴색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최저임금제의 역습은 곧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한 역습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저임금제 개편 등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생활경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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