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제2기 휘장 남겨진 유물 추가 발견… “근대 저수조 원형 볼 수 있어”

‘소방수조’(消防水槽), ‘방공수조’(消防水槽) 적힌 1930년대 채수구 덮개 확인
용산소방서 "근대 초기의 원형 그대로 남은 경우 드물어... 보존 힘쓰겠다"
후암동 2구는 회수해 용산구청 보관 및 문화재 등록 절차 중

▲(왼) 용산우체국 인근에서 발견된 '방공수조' 채수구 덮개, (오) 삼각지 인근에서 발견된 '소방수조' 채수구 덮개 /사진=정용부 기자

일제강점기 시대 서울시의 옛 이름인 경성부의 제2기 휘장이 남겨진 채수구 덮개(맨홀 뚜껑) 2구와 근대 초기에 건설된 저주조가 발견됐다. 이 저수조는 용산구 일대에 화재 진압이나 민방위 사태 발생 시 주민들에게 음용수 및 생활용수로 공급하는 비상급수시설로서 1930년~1944년 사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견은 1구는 시민 김영준(27) 씨가, 또 다른 1구는 26일 용산소방서의 도움으로 확인됐다. 23일 김씨는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평소 근현대 건축 유산에 관심 많아 용산 부근을 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먼저 삼각지 저수조는 근대 최초의 저수조 원형 모습을 볼 수 있다. 채수구 덮개 표면에는 가운데 제2기 경성부 휘장과 ‘소방수조’(消防水槽)이라 써져 있어 그 목적을 뚜렷이 보여준다. 내부는 쓰임을 다해 현재 비어있는 상태다.

또 다른 용산우체국 앞 저수조는 상수도 직결식으로 현재에도 사용이 가능할 만큼 상태가 온전하다. 역시 채수구 덮개 표면에 제2기 경성부 휘장이 그려져 있고 ‘방공수조’(消防水槽)라고 적혀 있어 전쟁과 같은 유사시를 대비한 저수조로 추정되고 있다.

▲용산소방서의 도움을 받아 용산우체국 앞 '방공수조'라 적힌 채수구를 열어 저수조 상태를 확인해 보고 있다. /사진=정용부 기자

▲삼각지 인근의 '소방수조' 채수구 덮개를 제보한 김영준 씨 /사진=정용부 기자

이 시설은 근대 소방사의 발전상과 경성부-서울시로 이어진 도시 역사성 모두를 충족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경제 성장을 위해 현대적 도시 개발에 몰두하면서 근대문화유적을 훼손하거나 파괴돼 갈수록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발견으로 일천했던 소방·수도 발전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며, 문헌으로만 남은 기록이 현장에서 증명돼 사회적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용산소방서는 2구의 채수구 덮개를 회수해 은평구로 이전하는 서울소방학교나 천안 중앙소방학교 등 관계 기관이나 본서에서 보관 및 전시할 계획이며 나아가 용산구청과 협의해 문화재 등록을 검토할 계획이다.

최병현 용산소방서 소방교 용수 담당은 “근대 초기에 건설된 저수조는 원형 그대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 개발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매립됐는데 이건 용케 살아남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용산소방서는 관계 기관과 협의해 활용 방안을 찾고 보존에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2일 본지는 일제강점기 시대 1926년 제정된 경성부 제2기 휘장이 남겨진 수도 덮개 2구를 최초 확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경성부-서울시로 이어진 역사 속에서 서울시의 휘장은 총 네 차례 바꿨다. 제1기의 휘장은 문서상으로만 기록돼 있으며, 제2기 휘장은 1926년에 제정됐으며 현재 공공재로 남은 유물은 이번 채수구 덮개와 함께 총 4구다.

앞서 발견한 후암로 수도 덮개 2구는 현재 용산구청에서 회수해 보관 중이다. 구청 치수과는 80여년 이상 사용한 덮개가 부식이 심하고 도난을 우려해 회수했으며 그 자리에는 임시 철제 덮개를 덮어 놓았다. 현재 용산구청은 서울시 문화재 등재 절차를 밟고 있다.


▲후암로 인근에 발견된 경성부 제2기 휘장이 박힌 수도 덮개. 현재는 용산구청에서 회수해 임시 덮개를 설치했다. /사진=정용부 기자

▲경성부-서울시로 이어진 휘장은 총 네 차례 바꿨다. 제1기는 현재 문헌상으로 기록돼 있으며 제2기가 박힌 공공재는 현재 총 4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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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