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기업수사와 검찰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28 17:28

수정 2017.12.28 17:28

[데스크 칼럼] 기업수사와 검찰

체면을 구겼다. 아니 초라하기까지 하다.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를 수사한 검찰 이야기다. 단순히 징역 10년 구형에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라는 형량만 이르는 것이 아니다. 검찰은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 범죄로는 역대 최대 규모"라며 "장기간에 걸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점이 드러났다"고 수사 결과를 자신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 혐의 대부분이 부정된 것이다.
지난해 6월 검사와 수사관 240여명을 동원해 17곳을 압수수색하며 진행한 고강도 수사가 미진했거나 증거에 의해 규명되지 않은 혐의를 밀어붙이기 한 결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신 회장에 대해 가족들이 불법이익을 취득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경영권을 공고히 한 데 따른 이익의 최대 수혜자라고 규정했으나 결과는 "아니다"였다. 따라서 가장 높은 수준의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검찰의 준엄한 구형은 구두선이 됐다.

비록 1심 재판부의 판단이라 해도 검찰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는 명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또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무죄판결이 확정되자 "폐목강심(閉目降心)의 세월을 보냈다"며 검찰을 향해 정권의 충견이니, 청부수사니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검찰은 유독 기업 수사에 가혹하다는 것이 재계 일반의 인식이다. 특히 재벌 총수 등은 반드시 구속해야 수사의 성과를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롯데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개별적인 상당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기업 사유화의 단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고 △성실하게 일한 임직원에게 자괴감과 상실감을 안겨주며 기업집단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질타했다. 다만 롯데그룹이 대내외적으로 처한 어려운 사정에 비춰 건전한 기업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와 국가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죄가 인정되는 혐의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책임을 지우되 본연의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에 대속하게 하는 것이 기업인의 손발을 묶어놓는 것보다 형벌의 집행 면에서 실효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범죄혐의가 분명한데도 수사하지 않거나 재벌이라고 해서 특혜를 주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다. 그러나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큼 반재벌정서 역시 팽배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과도한 압수수색과 반복적인 소환, 압박용 계좌추적 등을 통해서라도 끝장을 봐야 능력 있는 검찰로 봐주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권력의 요구에 못 이겨 준 돈을 뇌물로 몰아세운다고 하소연하는 기업인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 더해 이번 롯데사건 판결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 행태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들이댄 송광수 전 검찰총장의 고언이 와 닿는다. 그는 기업 등을 대상으로 강제수사를 할 때는 필요성, 수사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 다른 수단은 없는가를 그야말로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절제와 품격, 격변기 검찰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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