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군자가 하면 로맨스, 소인이 하면 불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유교 경전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다. 사리사욕을 탐하는 소인이 되지 말고, 부단한 자기수양으로 군자가 되라는 경구로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용어가 정치적으로 잘못 활용되면 흑백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 군자와 소인이 빈번히 나온 것은 성종 때부터였다. 사림이 기성 훈구세력을 비판하는 방편으로 이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누가 군자이며 누가 소인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성종 7년 3월, 왕조실록에는 사헌부 관리가 한명회와 관련해 조정 대신 몇몇을 소인이라 칭하며 벌을 청하자, 임금은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비록 성인이라도 이를 어렵게 여겼으니,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사림(士林)이 사간원.사헌부.홍문관에 대간으로 진출하면서 조정 대신들을 소인으로 몰아 탄핵하자는 간언이 빈번해졌다. 성종 24년 11월, 우의정 허종이 대간에게 논박을 당하자 죄가 있으면 마땅히 죄를 논하지 대신들을 소인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렇게 임금에게 아뢰었다. "… 평소에 이름 붙일 만한 죄가 없는데도…, '누구는 간사스럽고 아첨하며, 누구는 음험하고 교활하다'고 하여 후세에 전한다면, 어찌 폐단이 없겠습니까? 개국 이래로 이런 일은 있지 않았으니, 우리 세종 재위 30년 동안 군자니 소인이니 하고 지목하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이 용어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많은 신진 사림은 군자가 되기 위해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학문연마와 신심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림파는 기성정치의 비리를 폭로하고 척결하는 데 자기 목숨까지 내던졌다. 훈구세력과의 마찰로 사림은 연산군부터 명종 때까지 네 차례 큰 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불사조처럼 사림의 도덕 정화운동은 계속됐다. '군자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성리학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자에 대한 집착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본래 유교에서는 무리를 만드는 붕당(朋黨)을 나쁘게 보았다. 그러나 성리학은 소인들이 모이는 것은 붕당이지만, 군자들이 모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붕당이 아니라고 보았다.

성종 8년 11월, 경연에서 붕당 이야기가 나오자 임금은 "붕당은 심히 나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좌부승지는 "… 군자가 벼슬에 나오게 되면 뭇 군자들이 떼를 지어 나오게 되고, 소인이 벼슬에 나오게 되면 뭇 소인들이 떼를 지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군자는 이를 붕당이라고 일컬을 수 없지만, 소인 가운데 군자를 해치고자 하는 자는 붕당이라고 지목받게 됩니다"라고 아뢰었다.
중종 13년 2월, 조광조는 소인이 군자를 배척할 때 당(黨)이란 말로 죄를 꾸민다고 아뢰며, "대저 군자가 군자를 사귐은 도(道)가 같아 한 무리가 되는 것으로 이치에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성리학의 높은 도덕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림은 붕당도 '소인은 불륜이지만 군자가 하면 로맨스'라고 믿었다. '군자와 소인'의 틀에 매몰된 조선의 정치는 대화와 협치를 잃고, 상대를 소인으로 배척하는 당쟁으로 치닫게 됐다.

이호철 한국IR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