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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새로운 미래 향한 '해맞이'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2 17:01

수정 2018.01.02 17:05

[여의나루] 새로운 미래 향한 '해맞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새벽 어둠을 뚫고 달리는 이들. 숨을 헐떡이며 행여 늦을세라 정상을 향하는 사람들. 새해 첫 해맞이 행렬이었다. 첫 햇살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놓칠 걸 염려해서일까. 남녀노소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달음질을 멈추지 않는다. 서울 남산을 비롯해 북한산, 아차산 등에도 빌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모였다. 강원도 해변 70만명, 포항 호미곶 30만명, 부산 해운대 10만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어림잡아도 전국에서 수백만명이 모였을 것이다. 새해 첫날 해맞이에는 신성한 기운이 있을까. 추위를 무릅쓰고 단잠을 마다하고 산을 오를 가치가 있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도 서울 북한산에서 2018년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새해 새 일출을 보며 새로운 소망들을 품는다"고 말했다. "그런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한 것 같지 않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숨을 헐떡이며 달음질한 우리 모두의 솔직한 마음이 그것이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해맞이에서 품었던 소망들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뻔히 알고 있다. 새해 첫 해돋이에 영험한 신통력이 없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새로운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아쉬움과 절박함이 있기에 어둠 속을 달음질한 것이다. 영어의 1월(January)은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로마 신화에서 문을 지키는 신인 야누스는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앞 얼굴은 미래를, 뒤 얼굴은 과거를 본다. 1월이 새해와 지난해를 앞뒤로 보는 달이라는 상징이다. 과거를 돌아보지만 미래를 소망하는 우리의 새해 첫날을 말해 준다.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다. 과거를 보는 얼굴은 1월로 사라지고, 2월부터는 미래만 보도록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걸 뻔히 알지만 소망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작금의 국가적 상황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이념이 어떻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어려움을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린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릴레이 경주에서는 이른바 '바통터치'가 중요하다. 콩글리시이지만 이어달리기의 선행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막대를 넘겨주는(baton pass) 동작을 말한다. 지난해에는 박근혜정부가 불명예 퇴진하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릴레이에서 바통을 떨어뜨린 셈이다. 막대를 주워 들고 달린 새 정부의 국정운영이 힘들었을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선행 주자를 원망하며 뒤만 돌아볼 수는 없다.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뛰어야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다. 어둠을 뚫고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지난해 이루지 못한 것까지 만회하고 싶다고.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해를 보려고 쏟아져 나오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이 열정을 한데 모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지독한 가난을 당대에 탈피하고,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를 견인한 것은 국민들의 그런 열정 덕분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내고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바로잡은 것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에는 국민이 나아진 삶으로 보답받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과거 정권 담당자 모두를 감옥에 보낸다 해도 그런 소망이 이뤄질 수는 없다.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아니다. 적폐청산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붉은 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소망 자체가 올 한 해 이뤄지길 원하는 것이 아닌가. 새해에는 국민의 열정을 모아 국가적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지도자의 역량을 보고 싶다.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새해 소망이지 싶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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