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법조인]

박영립 화우공익재단 이사장 "공익활동은 법조인에 주어진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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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딛고 사법고시 합격 어려울 때 주변 도움받아 부채의식.소명감 느껴”

부채의식과 소명. 박영립 화우공익재단 이사장(64.사진)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여관 심부름꾼, 원단 시장 점원 등 온갖 궂은일을 했다. 스무 살에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소록도 한센병 피해자의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변호하는 등 공익 소송에 앞장섰다. 박 이사장은 "공익 활동은 법조인이 된 소명이고 어려울 때 도와준 많은 분에게 부채를 갚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4년간 법무법인 화우에서 대표변호사 직을 맡다 최근 화우공익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그를 서울 삼성동 아셈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가난 딛고 변호사 "부채의식 늘 갖고 있어"

"서울 가면 갈퀴로 돈을 쓸어 담는다고 해서 왔는데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죠"

박 이사장은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척 권유로 서울에 왔다. 15살 나이에 여관 종업원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러닝셔츠 차림으로 그만 뒀다. 그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점심 식사 장소를 잘못 알려줘 어린 마음에 무작정 도망쳤다"며 "결국 그날 연탄재의 남아있는 온기로 서울역 인근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전했다.

박 이사장은 이후 음식점 종업원에서 양복점 '시다'(보조원), 공장 청소부, 공사현장 일용직, 신문 배달, 애견 병원 청소부, 버스 계수원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동대문 시장 한 이불가게에 근무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가 일하던 가게 주인은 주변 상인들과 달리 세무서 직원에게 접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장부를 정리할 줄 아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이유에서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박 이사장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검정고시를 시작했다. 그는 오전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오후에는 가게 점원 생활을 하며 지냈다. 결국 중등, 고등 검정고시에 붙고 숭실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의 나이 23살 때 일이었다.

법조인을 꿈꾼 것은 대학 수업 때였다. 박 이사장은 "채플 수업을 들으면서 늦게 공부를 시작한 나의 소명이 무엇일까 돌이켜봤다"며 "이후 사법고시 관련 책을 읽게 됐고 시험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채의식은 어렵게 지냈던 어린 시절의 산물이다. 박 이사장은 "궂은일을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로펌 공익활동 더욱 권장해야"

실제 박 이사장은 법조인 생활과 함께 공익 활동에 나섰다. 그는 동대문 인근 교회에서 노동 법률 상담을 진행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대학 시절 은사와 인연으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공익 활동을 수행하기도 했다. 분명히 높게 살 일이지만 그는 시종일관 자신을 낮췄다. 박 이사장은 "물론 부채의식이 있어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지만 변호사가 되고 나서 일감도 없었다"고 웃어넘겼다.

법조인에게 공익 활동은 일종의 소명이라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권리와 인권의 확장은 투쟁의 산물"이라며 "법에 명문화되지 않은 소수자 권리를 사법절차를 통해 구제하는 게 법조인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한센병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해 10년 넘게 노력했다. 그는 소록도 보상청구 변호인단 한국 대표를 맡아 일제강점기 시절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센인을 대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피해자 590명이 1억원씩 보상을 받게 됐다. 또 한센인권변호인단장으로서 강제 단종(정관수술).낙태 피해를 본 한센인을 대리해 538명에 3000만~4000만원의 보상 판결도 이끌어냈다.

"한센인들은 매일 새벽 4시부터 기도를 드립니다. 그분들은 불만이 많을 법한데도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지냅니다. 10년 이상 소록도에 다니면서 오히려 저희가 그분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최근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공익사업이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지금은 부작용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경쟁해 법률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를 찾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수십년간 공익 법률 활동을 하다가 공익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이유이기도 하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