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독대의 함정

지난달 최태원 SK 회장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동을 놓고 뒷말이 많다. 논란의 골자는 임 실장이 최 회장을 만나 SK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업 관련 애로를 들었고, 얼마 안돼 UAE 특사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직전에는 최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보도 직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과의 독대는 명백한 오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덧붙여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기업 대표나 오너 등 경제인과 독대한 사실이 없다"며 정정보도까지 요구했다. 임 실장과의 회동에 대해서는 "청와대 밖에서 만난 건 사실이지만 UAE 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느라 바빴다. 그러면서 기업인과의 독대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업무 중 하나'라며 수습하기 바빴다. SK에도 불똥이 튀었다. 임 실장과 최 회장의 만남은 일반적 기업경영에 대한 대화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사실 SK는 UAE에서 최 회장이 애로를 건의할 만한 대형사업을 진행 중인 게 없다. SK 에너지 계열사들이 원유 등 석유자원을 수입하는 게 전부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SK와 UAE의 접점은 없어 보이는 게 합리적 판단이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정치쟁점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보수 쪽에서야 자신들을 권력의 변방으로 내몬 정경유착의 핵심이 기업인과의 독대이니 칼자루를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을 것이다. 소모적이다. 대체 이 나라가 어쩌다 기업인들이 국가지도자와 만나는 게 범죄 취급을 받게 됐단 말인가. 그러나 문 대통령이 '독대의 함정'에 빠졌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독대는 재벌 회장뿐 아니라 어느 누구하고도 해서는 안 된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 이후 청와대와 경제계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였다. 지난달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8대 그룹과 비공개 회동을 추진한 사실이 알려지자 무기한 연기했다. 이번 최 회장과 임 실장의 만남도 진실은 도외시되고 의혹으로 변질됐다. 국정운영의 한 축인 기업과 대통령의 스킨십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강대국 지도자들도 기업인들과 스스럼없이 만난다. 일자리를 만들고 국내투자하는 기업인들은 낯뜨거울 만큼 칭송하지 않는가. 오히려 국가지도자가 주무 부처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통해 듣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가공되거나 여과될 여지가 높다.
얼굴을 맞대고 날것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만큼 정확한 민심이 어디 있겠나. 만남 자체는 적폐 몰이가 돼서는 안될 일이다. 만남의 성격과 내용을 봐야 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마음껏 만나 소통하는 무술년이 되길 기원해 본다.

최갑천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