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이승만부터 김영삼까지 대통령 7인 외교 지켜봐…고노담화 등 韓·日 역사적 순간에 동참

김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4 16:59

수정 2018.01.04 16:59

(1)공로명 前 외무부 장관
공로명 前장관 △86세 △함북 명천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주카이로 총영사 △주브라질 대사 △주뉴욕 총영사 △주러시아 대사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일본 대사 △외무부 장관 △한일포럼 회장 △세종재단 이사장 △동아시아재단 이사장(현)
공로명 前장관 △86세 △함북 명천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주카이로 총영사 △주브라질 대사 △주뉴욕 총영사 △주러시아 대사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일본 대사 △외무부 장관 △한일포럼 회장 △세종재단 이사장 △동아시아재단 이사장(현)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대한민국 외교사의 굵직한 사건과 발걸음을 같이했다. 첫 공직 생활을 시작한 1958년부터 장관직을 내려놓은 1996년까지 외무부에 몸담은 기간만 무려 38년.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까지 대통령 7인의 외교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한·일 회담과 한·일 국교정상화, 베트남전 참전, 한미행정협정(SOFA) 체결, 코리아 게이트, 동백림 사건,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등 나열만 해도 역사책 한 권은 될 법하다.

특히 한·일 간 중요한 외교적 순간에는 공 전 대사가 있었다. 주일대사 시절에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군(軍)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고노 담화'가 나왔다. 또 아시아 침략 사실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된 것은 그가 외무장관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한·일 관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공 전 장관은 최근 미묘해진 양국 관계를 걱정했다. 위안부 문제에서만큼은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한다는 게 공 전 장관의 생각이다.

공 전 장관은 또 아시아, 미주, 아프리카, 러시아 등을 모두 경험한 '글로벌통'이기도 하다. 아주국장을 거쳐 주카이로 총영사와 주브라질 대사, 주뉴욕 총영사, 주러시아 대사 등을 지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모스크바에 영사처를 설치한 1990년 처장으로 파견돼 양국 수교를 결정적으로 기여한 뒤 초대 대사로 부임한 바 있다.

외무부 내 중남미국을 처음 만든 사람도 공 전 장관이다. 때는 1996년. 당시 일본은 물론 주요국, 심지어 북한까지도 중남미 관할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었으나 우리 외무부에선 미주국이 중남미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공 전 장관은 "정부 조직을 관리하는 총무처를 설득하면 기재부에서 예산을 주지 않았다"면서 "국을 하나 만드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 전 장관은 고민 끝에 초유의 대통령 중남미 방문을 추진했고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중남미국 신설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걸 왜 못 만드느냐'고 했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결재를 받았다"고 공 전 장관은 회고했다.

퇴임 후 공 전 장관은 한일포럼 회장과 세종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0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에 앞장서기도 했다.
동국대, 한림대, 동서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현재 동아시아 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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