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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공로명 前 외무부 장관 "한·미동맹 끈끈해야 북핵도 해결..양다리 외교 신뢰 못얻어"

박소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4 16:59

수정 2018.01.04 17:01

(1)공로명 前 외무부 장관
남북 뿌리깊은 불신
북, 우리를 협상상대로 생각안해.. 핵탄두 동결 등 차근차근 풀어야
한미관계 냉정히 볼 필요
북핵문제 결국 미국이 플레이어.. 우리가 거부하면 주한미군 철수
중.일과의 관계설정 중요
한.일간 위안부 합의는 잘된 것..3不 언급은 대표적인 외교 실수
북핵 문제는 2018년 무술년,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압박기조 속 대화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과거에 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감소한 것으로 평가되나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중국,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싶어하는 러시아, 미국을 등에 업고 동북아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일본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분위기를 조성코자 하는 문재인정부. 남과 북, 미·중·일·러 6자 간 셈법이 복잡다단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집권 2년차, 파이낸셜뉴스는 새해 첫 외교분야 시리즈로 미.중.일.러 주변 4강에서 활약해 온 전.현직 외교 인사들에게 '대북해법 길을 찾다'를 주제로 한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언을 들어봤다.
사진=서동일 기자
사진=서동일 기자


"한.미 동맹에 닻을 내리지 않은 채 미국과 중국을 모두 다 잡으려 한다면 결국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법 역시, 한.미 동맹에 기초해 풀어나가야 한다. 북한은 우리를 상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플레이어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단독)플레이어가 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의 파트너가 돼야 한다.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야 하는 이유다."

반세기 가까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했던 약소국 외교관의 치열했던 순간들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듯했다. 지난 세월 기대와 실망으로 점철됐던 대북정책의 교훈도 빼놓지 않았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외교분야 민간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한국 외교의 '거목',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현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사진)을 지난 4일 서울 필운대로 동아시아재단에서 만났다.

대화의 시작은 한.중 수교와 1차 북핵위기로 격랑에 휩싸였던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공 전 장관에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약소국 한국이 주변국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당당히 제 역할을 했던 장면으로 남아 있었다.

"지호전 부장의 방미가 연기됐다고 들었다. 긴장이 고조된 상황일수록 더 만나야 하지 않겠나…."

1996년 3월 미국 워싱턴DC. 미국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을 만난 그(외무장관 신분)는 4월로 예정된 지호전 중국 국방부장(장관)의 미국 방문을 연기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총통 직접선거로 대만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 때였다. 중국은 이에 반발,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과 대만 상공을 넘는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양안 관계가 갈등으로 치닫던 시기, 미국으로선 껄끄러운 만남을 주저했다. 공 전 장관은 페리 장관을 만나기 직전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국가주석, 리펑 총리 등 지도부를 만난 터였다. 중국의 생각을 읽어내린 그가 자신감을 갖고 "만나라"고 했던 것. 공 전 장관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미국에서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국무부 윈스턴 로드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중국으로 급파하겠다." 대만해협에서 고조됐던 미.중 긴장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데 한국 외교가 제 역할을 했던 순간이었다.

공 전 장관은 "미국과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이 끈끈하면 우리가 중간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양쪽 모두로부터의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한.미 동맹의 파트너임을 분명히 해야 해요. 우리가 설 자리는 우리가 만들어야죠. 엉거주춤, 양다리는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받지 못합니다."

대화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공 전 장관은 "북한 핵 문제는 더욱 진전할 것이고, 한반도 긴장은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선 "12·28 위안부 합의는 상대가 있는 만큼 합의는 그대로 가져가되, 우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을 감싸안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 협상 파기나 재협상에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봉인 과정에서 나온 '3불(三不)'을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외교 실수"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공 전 장관과 일문일답.

―요즘 한반도 정세가 복잡하다.

▲제일 어려운 것은 북한이다. 북한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도 어렵게 됐다. 북한 때문에 모든 것이 안 풀린다. 1972년부터 대화했지만 뭐가 될 것 같다가도 다시 끊기길 반복했다. 사실 6자회담 시작될 때 잘하면 성공하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다. 결과는 '부질없는 기대'(wishful thinking)였고, 우리의 오산이었다.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러시아가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는데도 북한은 평화.공존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당시 북한과 직접 교섭한 상황은 가슴 깊은 상처와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북한도 한국 사람만 보면 이를 간다. 이게 불신이다.

―상호 불신이 외교에선 어떻게 발현되나.

▲신뢰하지 못하는 상대일지라도 대화할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세계대전 당시 미.소 간 회담이다. 당시 합의도달 방식을 보면 단계적 해결(step by step)이었다. 주고받고, 또 주고받았다. 그렇게 상호보장(assurance)을 확보해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과 정치적 타결을 했다. 그런 타결은 당장 되더라도 또 다음에 휴지가 될 수가 있다. 북한과 한 합의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지금 어떻게 됐나. 휴지 조각이 되고 있지 않나

―'단계적 해결(스텝 바이 스텝)'의 첫 스텝은 무엇으로 시작하나.

▲북한은 사실상 핵을 보유했다. 첫 단계는 그 이상의 활동, 가령 핵탄두 숫자를 늘린다든지 하는 것들을 동결할 수 있겠다. 북은 그에 상응하는 안전보장을 얘기할 것이다. 이런 주고받기가 오랜 시간 걸려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문제는 핵 동결에 대한 사찰을 서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다. 북한은 이제까지 이걸 받은 적이 없다. 궁극적인 북한의 비핵화로 가는 길에 있어 가장 어려운 장벽이다.

―결국 북.미 간에 풀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 우리는 플레이어의 일부가 될 수는 있지만 플레이어가 될 수는 없다. 북한은 핵과 관련해서는 우리를 상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의 파트너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엔 한.미 관계와 관련, '근거 없는 두 가지 신화'가 있다. 미국이 필요해서 유지한다는 것과 주한미군은 우리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간다는 것. 주한미군은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간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마지막에 이것(전쟁)밖에 없다고 하면 할 수 없지 않나. 가능성은 항상 있다. 미국 외교안보라인에서 모든 옵션을 열어둔다는 것은 그 의미다. 이 경우 한·미 관계가 끈끈하지 않고 유대가 약화된 상황이라면 한국군의 희생을 그들이 고려하는 정도가(약화될 것)…. 그런 면에서도 한·미 동맹은 중요하다. 또 우린 중국에 대해서 허망한 꿈을 꾸고 있다. 중국을 통해 북을 설득할 수 있다는 거다. 북한에 대해서 중국이 기름이나 식량 등 북한을 다룰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근데 그 카드를 중국이 쓰느냐 하면 안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회고록에도 그렇게 돼 있다. 중국이 북한 카드를 버리게 되면 미국과 한국이 이득을 보게 된다. 중국은 북한을 '순망치한'이라는 전략 개념으로 본다.

―일본과의 관계로 넘어가보자.

▲중국은 정책을 일단 결정하면 국가가 온 역량을 집중한다. 아주 무서운 나라다. 그런 나라 옆에서 우리 주권, 우리 독립을 유지하려면 우리 뒤에 받쳐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이념과 가치관이 같은 자유세계, 일본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 검증 결과가 나왔다. 국민 감정과 외교, 같이 풀어야 하는데.

▲그렇다. 요즘은 특히나 외교가 국민감정과 더 같이 가야 한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 위안부나 독도와 같은 역사적 문제는 지나가고, 그보다 긴요한 현실적 문제를 협조하고 협의해나가는 게 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교는 국민적 이해와 국민적 지원 없이는 안 된다. 거기에 한.일 관계에서 항상 국민감정이 저해요건이 되는 것이 독도와 위안부다. 2015년에 했던 위안부 합의, 평가가 다양하지만 나는 잘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 측면에서다. 고노 담화도 그런 것 아니냐. 결국은 우리 국민이 소화해야 한다. 우리가 할머니들을 품어 안아야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취임 당시 응원하셨는데 강 장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지금 외교부는 완전히 대한민국 외교정책에서 소외돼 있다. 청와대에서 '3불' 발언했을 때도 외교부 간부가 깜짝 놀랐다고 하지 않나. 도대체 왜 3불을 입에 담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 입장은 이렇다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장관이 좀 더 큰 시야로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자신의 소신이 거절됐을 때는 사표를 낼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합의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예견하지 못한 것 아닌가.

psy@fnnews.com 박소연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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