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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정종욱 前대사는.. 황장엽 망명때 주중대사로 핵심 역할

김은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7 17:52

수정 2018.01.07 18:19

(2)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황장엽 망명때 주중대사로 핵심 역할…1차 북핵위기때부터 대북현안 옆에서 지켜봐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약력 △78세 △경남 거창 △부산고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석사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중대사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인천대 중국학술원장(현) 사진=서동일기자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약력 △78세 △경남 거창 △부산고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석사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중대사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인천대 중국학술원장(현) 사진=서동일기자

때는 1997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 선생이 한국으로 망명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은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중국 정부에도 충격을 안겼다. 황 선생이 문을 두드린 주중 한국대사관의 수장이 바로 정종욱 전 주중대사다.

"중국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고 대사관 주변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쫙 깔렸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시체라도 좋으니 황 선생을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하더군요."

정 전 대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황 선생은 한달여 대사관에 머물렀고 그의 신변 보호는 정 전 대사의 임무였다. 중국 외교부와의 조율도 측면지원했다.
정 전 대사는 자칫 국가 간 충돌로 번질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제3대 주중대사를 지낸 정 전 대사는 학자 출신의 외교관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와 예일대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각각 취득한 뒤 약 20년간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김영삼(YS)정부가 출범한 1993년 초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시절 정 전 대사는 1차 북핵위기, 북.미 제네바 핵합의 등의 대형 대북 현안을 겪었다. 정 전 대사가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식견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정 전 대사는 전했다.

"핵 문제로 전쟁이 코앞에 닥치는 위기를 겪은 후인 1994년 6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어요.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기회였죠. 뜻밖에도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말이에요." 정 전 대사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당시를 표현했다.

정 전 대사는 이후 외무부 본부대사를 거쳐 주중대사로 임명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주중대사로서의 2년4개월은 '본격적인 현장실습'이었다.
학자로서 연구를 통해, 관료로서 정책을 통해 살폈던 중국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주중대사를 끝으로 정 전 대사는 학계로 돌아왔다.
서울대와 아주대, 동아대 등을 거쳐 현재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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