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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도약 대북해법 길을 찾다]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中, 북핵 ‘관리’만을 원해…'해결'은 결국 美에 떠넘길 것"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07 17:52

수정 2018.01.07 17:52

(2)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中이 압박한다고 북핵 포기?
시진핑.김정은 시대 유대감 줄어.. 송유관 잠근다고 北이 손들겠나
정상회담 뒷거래는 안돼
통미봉남은 지금 정부도 딜레마.. 북, 정상회담땐 큰 대가 요구할 것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이 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올해 한반도 안보상황을 비롯해 북핵문제 전개방향 및 해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이 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올해 한반도 안보상황을 비롯해 북핵문제 전개방향 및 해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일생 세번의 전기가 있었죠. 첫번째는 1970년대 미국 예일대 유학시절, 미.중 데탕트 외교가 펼쳐지던 시절이었죠. 중국을 전공하기로 한 게 그때부터였어요. 두번째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재직 당시 어떻게 하면 중국을 좀 접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보 갈증을 느끼던 시절이었는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남북관계에 획기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시기였고…, 아예 사표까지 던지고 갔는데. 그 때문에 집에서 미움도 많이 받았지만 후회는 없죠. 마지막 하나는 중국대사(1996년 2월~1998년 4월)로 임명돼 본격적으로 '현장 실습'을 했던 것이죠. 지금도 나는 연구를 합니다. 언젠가 책으로 내겠지만 혁명 완수를 위해 멸사봉공,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마저 포기했던 저우언라이(주은래)에 대해 말이죠." 그의 일생처럼 북한 핵문제, 한·중 관계 역시 큰 전기가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새로운 전기를 앞두고 있다.
노학자는 끝나지 않은 숙제들에 대해 얘기했다. "이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를 풀려들겠지만, 근시안적으로 북한을 대하다가는 110여년 전 우리 문제에 우리가 소외됐던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반복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중국연구 권위자이자 외교 원로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전 주중대사)를 새해벽두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의 구상이란.

▲기본적으로 북한 핵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관리는 가능해도 해결은 안된다는 것인데…. 기존에 지금까지 미국이 중국에 북핵을 해결해보라고 '하청'을 줬다면, 이제는 중국이 미국에 해결해보라고 떠미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미국에 역으로 '하청'을 주는 꼴인데. 북.미 대화를 하란 말이다. 그러면 중국은 자신들의 역할은 어디에 두겠다는 것이냐. 자신들은 북한의 군사적 행동, 북한 내 정치적 공황상태, 사회혼란 등이 있을 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해결'과 '중국의 관리'라는 역할론인 셈이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발발을 막겠다는 것도 그런(관리)차원이다.

―북.중 관계는. 또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과거 1990년대 주중대사 시절, 랴오닝성 성도 선양에 가보면 외국사절을 영빈관에서 투숙시키는데, 영빈관 가운데 18호각이 가장 큰 집이었다. 그 집은 특수시설로 아무도 사용 못하게 했는데 바로 김일성 전용 누각이었다. 김일성이 한때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적어도 항일투쟁을 같이 했으며 중국말도 잘해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필요하면 평양에서 기차 타고 내부방문이라고 해서 아무 발표도 없이 중국에 들어와서 쉬면서, 선양서 일도 보고 필요하면 베이징에서 온 지도자와 회담도 하고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질 않나. 후진타오 시대로 가면서 혁명동지적 관계가 많이 퇴색됐고, 이어 시진핑-김정은 시대로 가면서 정치사상적 의미에서의 공감대도 완전히 없어진 것 같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임은 분명하나 북한이 그야말로 핵을 포기할 정도로 중국이 북한에 강한 압력을 가할 수단을 가지고 있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제재와 압박으로 원유공급 중단이 거론되곤 하는데.

▲2003년 봄, 1차 북핵위기 이후 북한의 핵 개발이 다시 시작됐다. 첸치천 부총리가 평양으로 날아갔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첸지천이 베이징에 돌아간 다음날 중국은 북으로 들어가는 송유관을 닷새간 잠가버렸다. 그러자 두 손 들고 6자회담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대화 참여와 핵개발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란 것이다. 지금에 와서 중국이 송유관을 잠근다고 해서 북한이 금방 손을 들겠는가. 중국의 걱정은 북한이 항복은커녕 극단적으로 반발하지 않겠느냐. 북한에 대한 압력이 지나쳐 붕괴해버리거나 혼란이 생기거나, 또는 김정은이 완전히 중국에 등을 돌려버리는 그런 상황이 되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게 중국의 판단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어디에 둬야 하는가.

▲북핵 문제라든지 안보에 대한 위협이 현존하는 한 기본적인 한·미 관계를 흔드는 건 안된다. 1905년에 태프트-가쓰라 비밀협정이 이뤄졌다. 극단적으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그런 게 또 안 나오리라는 법도 없다. 근시안적으로 북한 문제를 들여다보지 말란 얘기다.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통미봉남은) 모든 정부의 딜레마다. 당사자인데 운전석엔 앉지 못하더라도 같이 동석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없는 상태에서 북.미 간에 대화가 이뤄지게 되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참기 어렵다. YS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내면서 200% 실감했던 게 바로 그거다. 김영삼 대통령이 가장 견디지 못했던 게 바로 남북대화가 안되는 상황에서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남북대화는 기본적으로 정상 간 대화다. 지금 경우, 특히 이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때 정상회담을 해본 정부가 아니냐. 정상회담으로 풀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북한으로 볼 때 남북회담이니 특히 남북 정상회담은 남측에 써먹을 수 있는 가장 큰 카드이기 때문에 쓴다면 다른 계산이 있는 것이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했기 때문에 그 대가가 높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격표'가 더 높아졌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 등 우방국과 긴밀히 협의해가야 한다. 뒷거래나 비밀협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가 변해 그런 것들을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황장엽 망명 사건 때 주중대사를 지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황 선생 망명 후 마닐라로 떠날 때까지 한달 이상을 베이징에서 사실상 함께 지냈다. 황 선생이 내게 들려준 많은 얘기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은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주체사상의 핵심인물이었으나 남한 인사들이 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의도와는 너무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통탄했다. 그는 남한에서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것을 걱정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국전문가인데, 지난해 말 한.중 정상회담의 대차대조표를 어떻게 보는가.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기자폭행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첫 반응이 우리 국민을 너무 분노케 했다. 이게 뭐냐는 거다. 우리 기자가 그것도 청와대 취재하는 비표를 달고 들어간 기자들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정부의 직원이든 경호처 직원이든 혹은 민간인이든 또 고용한 경비인력이든 간에 그렇게 맞는다고 하면 그건 상상이 안되는 얘기다. 아마 외국의 경우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정상회담을) 보이콧했을 일이다.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시진핑을 참석시키고, 이를 매개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했던 게 정부의 의도였는데 그걸 누가 반대하겠느냐. 정부가 지나치게 많이 투자했다는 느낌이 든다.

―사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정부는 봉인됐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수면 밑으로 잠복했다고 보는 게 맞을거다. 중국도 해결이 아닌, 앞으로 두고두고 관리해 나가는 단계적인 문제로 생각할 것이다. 다른 말로는 중국이 문제를 만들고 싶다면 그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정책이 좀 더 강경선회하게 되면 우선 3불(不)입장에 따른 그 부담을 우리가 오롯이 떠안아야 할 것이다.

―대중국 외교에서 외교안보팀이 유의해야 점은.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미국에 대해선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는 일종의 확신.신념 같은 걸 가지고 있는데, 중국에 대해선 그렇지가 않다. 저자세나 굴욕적 외교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번 만들어지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처음부터 당당한 자세로 나가야 한다.

―시진핑.트럼프 시대에 미.중 관계 전망은.

▲앞으로 한 30~40년간 강대국 간 패권경쟁은 '바다'에서 이뤄질 것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해양봉쇄 구상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을 몰아내려고 하는 시진핑의 꿈이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이다. 지난해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이미 2050년엔 미국을 제압하는, 미국을 넘어서는 그런 유일 패권국의 꿈을 제시하지 않았나. 중국 해군 창시자로 중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류화칭(1916~2011년·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이미 1980년대 3단계 해양전략인 도련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마지막 제3도련, 태평양· 인도양 지역에서 완전히 미국 해군을 쫓아내는 것을 2050년쯤으로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관계가 상당히 경직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경우에 따라선 소규모 군사충돌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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