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지령 5000호 이벤트
새해 첫날 찾아간 동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처음 보는 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인건비가 올라 아르바이트 직원이 그만두고 주인 아저씨 가족 되시는 분이 일하시는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첫 출근길 항상 지나치는 주요소의 가격판을 보았다. 휘발유 가격이 드디어 L당 1600원을 넘었다. 불과 몇 달 전 1400원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 가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나마도 싼 편이었다.

서울에 진입해서는 2000원을 넘는 곳도 보았다. 차에서 내려 회사 근처 자주 가는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카운터 앞에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격을 올리니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동료가 집주인이 전셋값을 많이 올려 엄동설한에 이사를 해야 한다고 푸념한다.

모든 물가가 갑자기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책상에 놓인 신문에 작년 경제성장률이 3%를 넘어서고, 올해에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는 구직 게시판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한 청년의 사진을 본다. 기사 타이틀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률'이었던 것 같다. 작년 5월 청와대 집무실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 앞에 대통령께서 미소를 띤 표정으로 시연하는 사진이 기억이 난다. 두 장의 사진이 자꾸 오버랩 된다. 근심 어린 표정과 미소를 띤 표정 말이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고매한 정치 이념과 도덕적 통치철학을 가졌더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의 마음은 멀어질 수 있다. 새 정부가 내놓은 많은 정책들이 정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당연히 사회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돌보고 보듬어 안아야 했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을 새 정부가 나서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 국민에게 좋아지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정규직 비중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사람을 덜 뽑으려 하지는 않을까?

특히 가뜩이나 좁은 청년들의 취업문이 아예 닫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데 정부도 땅을 파서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닐 텐데, 대다수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지는 않을까? 그런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가 말하는 더불어 잘사는 포용적 복지국가도 좋다. 적폐를 청산하고 촛불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도 좋다.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도 물론 좋다. 다 좋은데, 좋기는 한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왜 가슴에 와닿지가 않을까? 아마 필자가 고매한 사회적 이상보다 먹고사는 문제만 중요시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필부여서 그런가 보다.

퇴근 후 집에 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대통령께서 새해인사를 하신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올해는 우리 국민들께서 '나라가 달라지니 내 삶도 좋아지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일단 새해 첫 출근 날 어렴풋이 느낀 것은 '국민들 중 최소한 한 명의 삶은 작년보다 나빠지겠구나'였다.

주 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