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트럼프의 1년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1 16:44

수정 2018.01.11 21:14

[데스크 칼럼] 트럼프의 1년

1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 부인 멜라니아의 표정이 꽤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내성적 성격의 모델 출신인데 익숙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여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아야 하는 날이니 긴장감이 무한대로 증폭된 때문 아닐까. 그 정도로 이해를 했다.

그날 오바마-트럼프 신·구 대통령 커플의 첫 만남에서 멜라니아가 예정에도 없던 사각박스 선물을 미셸에게 건넨 것 역시 그런 맥락으로 봤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준비하던 미셸은 당황했고, 그 표정은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어진 취임식장. "오늘 이 순간부터, 살육은 끝났다" 같은 기막힌 연설이 등장했다. 돌아보면 당일 순간순간이 그로테스크하지 않았나.

요즘 미국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는 그날 풍경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해준다.
당선을 실제 예상치 않았던 멜라니아는 선거발표 직후 충격의 눈물을 쏟았고 취임식 당일에도 부부는 대판싸움을 했다는 게 저자의 취재 결과다. 트럼프는 가짜책이라고 깔아뭉개고 있으나 현지 반응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트럼프 체제와 함께한 시간이 오는 20일(현지시간)이면 꼭 1년이다. 인류애, 화해, 상생 같은 보편적 가치의 세계질서를 화끈하게 뒤집은 기록적인 인물 트럼프. 주류 정치인들의 가식과 위선에 지긋지긋했던 이들은 트럼프 새 아이콘을 계속 즐겼으리라. 하지만 그 나머지 세계는 그의 출현으로 놀라운 경험을 연일 했다.

유럽 트럼프 후예들의 약진을 보면 대중의 이기심이 얼마나 강력한 정치밑천인가 새삼 느낀다. 2차대전 후 서유럽 최초로 집권정부가 된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 서구 자유진영 구심 메르켈 총리의 발목을 잡은 독일 극우 AfD, 이탈리아 3월 총선 주역자리를 예약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 관용과 포용의 유럽 사회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우려스러운 건 '트럼프 마이웨이'로 더 강력해진 이웃 스트롱맨 3인방 행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중국 절대권력이 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2기도 본격 막을 올렸다. 과거 서구열강에 짓밟힌 중화사상의 완전한 회복, 그 '중국몽(中國夢)'을 향한 그들만의 무한질주는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의 실체를 사드 이후 질리도록 봤고, 지금도 보고 있으니 그저 걱정스러울 수밖에.

3월 대선을 앞둔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누가 그를 상대하겠나. 뻔한 결과가 바뀔 리 만무하다. 이번 대선으로 24년 지배자의 길을 가게 될 푸틴은 21세기 러시아 부흥을 부르짖으며 맹렬한 걸음을 할 것이다. 지금도 냉전 유물 속에 삶이 뒤엉켜 있는 러시아인들은 그런 푸틴만이 그들에게 영광을 줄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도전은 올해 절정을 향해 달린다. 자민당 총재 3연임 성공,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위해 극우 팽창 야욕 본능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이 철인 3총사에 둘러싸인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지금 정부 대응능력을 보면 실로 아슬아슬하기만 한데, 남은 시간 달라질 수 있기를. 영민한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살고 있다.

최진숙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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