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형사공공변호인이 필요한 이유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5 17:21

수정 2018.01.15 17:21

[기자수첩] 형사공공변호인이 필요한 이유

"내가 돈도 안되는 경찰서를 왜 가요. '새끼'(법무법인에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초짜) 변호사 보내요."

며칠 전 기자와 처음 대면한 한 중견 변호사가 커피를 한잔 마시다 여비서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쏘아붙인 말이다. 그는 경찰서에 같이 가서 조서 작성을 도와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찰 초동수사 때 변호하는 일은 공들인 시간에 비해 수임료를 적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전화를 끊고 "돈을 많이 주면 (경찰서에 가서) 일하지"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이 같은 일은 이 변호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변호사 업계 일각에서는 수임료를 많이 받지 않으면 경찰 초동수사 때 변호에 나서지 않거나 신출내기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게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 변호사를 선임하기 힘든 가난한 피의자는 법률 조력을 받지 못해 인권침해.불법수사 등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는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와 불법수사를 막고 경제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수사부터 재판까지 충실한 변호를 받을 수 있는 '형사공공변호인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지금은 재판에만 참여하는 '국선전담변호인제'가 있다. 형사공공변호인제가 시행되면 인권보호 강화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러나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공공변호인은 공무원 신분으로 일정 급여를 받고 변호인단의 단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국선변호'인데 국선변호에 행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대해 "밥그릇 사수 아니냐"는 곱지 못한 시선도 있다.

형사공공변호인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어떻든 간에 이 제도가 왜 호응을 받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초 업계가 대기업 사건 등 굵직한 사건 수임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돈이 크게 안되는 사건도 환영했다면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제도 시행을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나 싶다.

변호사는 '법조 삼륜'(판사.검사.변호사)의 한 축인 만큼 금전을 추구하기 전에 인권보호에 대한 사명감을 먼저 갖는 게 당연하다.
이 제도 도입이 변호사의 역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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